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모든 대상국에 대한 상호관세 발효를 90일간 전격 유예했다. 이날 0시 1분 상호관세가 발효된지 약 13시간만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일단 향후 90일간 25%의 상호관세 대신 10%의 기본 관세만 적용받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를 즉시 125%로 인상한다”며 “세계 시장에 중국이 보인 존경심의 부족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대로 75개국 이상이 무역, 무역 장벽, 관세, 환율조작, 비관세 장벽 등의 주제에 대한 해법을 협상하기 위해 미국 대표에게 전화한 사실과 이들 국가는 어떤 방식이나 형식으로 미국에 대해 보복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나는 90일간의 유예와 이 기간에는 10%의 (기본) 상호관세를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전격 유예는 미국 등 전 세계 주식 시장이 연일 폭락하며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왔다. 하지만 스콧 베센트 재무 장관은 상호관세 인하 발표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식시장 급락 때문에 상호관세를 유예했냐는 질문에 “아니다. 많은 요청이 있었고 75개가 넘는 국가가 우리를 접촉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트럼프의 전격 유예 이후 미국 증시는 급반등했다. S&P 500 지수는 이날 9.5% 상승해, 2008년 10월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트럼프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관세 유예 배경에 대해 “사람들이 점점 불안해하고 있다. 조금씩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 급락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트럼프도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며칠간 금융시장이 “꽤 침울했다”가 반등했다며 “그건 꽤 큰 변화다. 내가 생각하는 단어는 유연성이다. 유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러면서도 “아직 아무 것도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들로부터 엄청난 열의를 받고 있다”며 “거래를 원하는 나라가 75개국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베센트 장관도 “각 국가에 대한 해법은 맞춤형으로 할 텐데 그건 시간이 약간 걸릴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90일 유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전격 유예에도 자동차, 철강 등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한국 정부로서는 일단 90일간 협상 시간을 벌게 됐다. 대통령 탄핵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과도기 속에서 현 정부가 관세 협상에 급하기 쫓기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날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가진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유예 조치는 미국 측과의 관세 협상을 지속해 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미국이 앞으로 미국무역대표부(USTR), 재무부, 상무부가 상호 연계해서 한국과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의 고율 상호관세 유예에 대해 “충격적인 반전”으로 평가하면서 “이번 조치로 무역 파트너들은 90일 동안 트럼프에게 관세 인하를 위한 거래를 제안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