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연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에 10년 걸린 이유는?

입력 2025-04-06 10:02
피아니스트 최희연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베토벤을 미치도록 사랑했던 것 같아요. 인간 베토벤도, 그의 음악도 그리고 그의 강박도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최희연(56)이 32곡에 달하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9장)을 데카 레이블에서 발매했다. 2015년 첫 녹음을 시작한 이후 10년이나 걸린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답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만난 최희연은 “(베토벤을) 왜 사랑했는지는 묻지 말아 달라. 그 사랑이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점점 더 깊어졌다”면서 “녹음을 마치고 라이너 노트(연주자가 음반에 쓰는 해설문)와 녹음 후기를 쓸 때 정말 감격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6세에 인천시향과 협연으로 데뷔한 최희연은 국내 주요 콩쿠를 석권한 뒤 서울예고 재학 중 유학을 떠나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와 미국 인디애나 음대에서 수학했다. 비오티, 카펠, 에피날, 부소니 등 유서 깊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그는 31세 되던 1999년 서울대 음대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공개 오디션을 통해 교수로 임용됐다. 2023년부터는 미국의 명문 피바디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피아니스트 최희연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2002년부터 4년간 금호아트홀에서 선보인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로 그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입지를 다졌다. 당시 전석 매진 기록과 함께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그는 2003년 금호문화재단의 제안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을 하려 했으나 임신으로 차질이 생겼다. 그는 “(당시) 아이를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 (아이의) 생명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이듬해 후원자가 돌아가시면서 하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면서 “사실 내심 전곡 녹음을 하기에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돌아봤다.

오랜 과제였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은 2015년 마침내 시작됐다. 자신의 연주에 대한 회의감으로 중단하기도 했지만 프로듀서 마틴 자우어, 조율사 토마스 휩시 등의 격려 덕에 마침내 완성했다. 10년의 여정 동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앨범을 두 장 발매했다. 2019년 첫 번째 앨범에 18번, 26번, 27번, 30번을 수록했고 2021년 두 번째 앨범에 17번 ‘템페스트’,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을 담았다. 이번 전곡 앨범에는 앞선 두 앨범에 수록된 곡의 리마스터링 음원을 포함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베토벤에 천착하게 했을까.

피아니스트 최희연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어릴 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시던 어머니가 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작품을 물어보는 작곡가가 언제나 베토벤이었어요. 저희 어머니는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으셨지만, 베토벤의 음악이 지닌 투지와 용기, 뚫고 나가는 힘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저 역시 베토벤의 음악은 항상 문제로 시작해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보다도 베토벤의 음악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과 30번, 31번, 32번 소나타를 연주한다. 그는 “이번에 선택한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는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처럼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된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어느 시대보다 베토벤 음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