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는 높고 눈은 강철빛 회색. 코는 곧으며 콧수염과 턱수염이 있고 얼굴은 길며 머리카락은 회색이다.”
1891년 3월, 미국 국무부가 발행한 한 장의 여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진 대신 수기 묘사로 기록된 이 남자의 이름은 존 가우처(1845~1922). 140년 전 조선에 헨리 아펜젤러(1858~1902)를 보낸 인물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감독 박인호 목사)는 5일 충남 천안 연회 본부에서 아펜젤러 선교사 내한 140주년 기념 예배를 열고 미국 볼티모어 러블리레인교회로부터 기증받은 가우처의 여권 사본을 공개했다. 이 여권은 그가 조선을 방문하던 시기에 발급된 것으로 감리교 초기 선교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배는 충청연회가 지난달 진행한 미국 동부 유적지 탐방의 결산 성격으로 마련됐다. 연회 단체장과 목회자, 평신도 대표 등 35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열흘간 사우더튼 랭카스터 볼티모어 워싱턴 D.C. 뉴욕 보스턴 등지를 돌며 아펜젤러와 감리교 역사 관련 유적지를 방문했다.
순례단은 아펜젤러의 고향인 사우더튼에 있는 임마누엘 라이디 교회와 아펜젤러 가족묘지, 생가를 찾았다. 이어 랭카스터 제일연합감리교회와 프랭클린앤마샬대학을 방문해 아펜젤러의 파송 배경과 학업 기록을 살폈다. 대학 재학 당시의 성적표 사본도 확보했다.
볼티모어 러블리레인감리교회에서는 미국 감리교 초기 유산과 감리교 박물관을 견학했으며 조선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의 남편 박여선의 묘소, 미국 감리교 속회 발상지인 스트로브릿지 성지 등을 둘러봤다.
이번 탐방에서 충청연회는 19세기 말 조선 선교를 위해 아펜젤러를 파송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가우처 목사의 여권 사본을 러블리레인교회로부터 기증받았다. 해당 여권은 가우처가 조선을 여러 차례 방문할 당시 사용했던 것으로 러블리레인교회가 보관해온 감리교 역사자료 중 하나다. 가우처 목사는 생전 7차례 조선을 찾았다.
탐방단을 이끈 남광현 동백정교회 목사는 “가우처는 1883년 미국에서 보빙사절단을 우연히 만나 감리교 선교에 뜻을 품고 이후 아펜젤러를 조선으로 파송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여권 사본 공개는 140년 기독교 선교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전했다.
예배에서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증손녀인 쉴라 셰필드 플랫 여사의 영상 메시지도 소개됐다. 그는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선으로 떠났던 증조부의 헌신을 기리며 한국 감리교회와 함께 140주년을 기념하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라트렐 이스터링 미국 볼티모어-워싱턴연회 감독은 축하 서신을 보내 “러블리레인교회에서 충청연회 순례단을 맞이해 감리교의 역사적 유산을 함께 나눈 것이 큰 기쁨”이라며 “감리교인으로서 받은 사랑을 세상 속에서 살아내자”고 전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