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외신들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소식을 긴급 타전하면서 한국 정치 불확실성이 일단 해소됐다고 4일 보도했다. 다만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헌재 결정에 반발해 결집하는 등 사회적인 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신들은 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세계 질서가 격변하는 시기에 한국이 ‘리더십 공백’ 상태에 있었다면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CNN 방송은 헌재 결정으로 지난해 12월 국가를 정치적인 혼란에 빠뜨린 계엄령 선포 이후 이어진 수개월간의 불확실성이 종결됐다고 분석했다.
CNN은 또 “이번 파면은 몇 년 전 다른 대통령 탄핵과 수감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두각을 나타낸 검찰 출신 정치인이 명예로운 지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된 놀라운 추락”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 박 전 대통령 구속에 관여한 점을 언급한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은 “이날 파면으로 윤 전 대통령은 스캔들로 명예가 훼손되거나 임기가 중단됐던 전임자 길을 따르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은 민주화 이후 집권한 거의 모든 대통령이 부패·뇌물·횡령·권력남용과 관련한 스캔들에 휘말렸지만,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이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WP는 윤 전 대통령 정치 경력은 짧게 끝나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수개월간 이어진 정치적인 혼란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전문가 진단을 전하며 “(윤 전 대통령) 파면은 보수당과 지지자들을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역시 이날 결정이 있기까지 탄핵 찬반 집회가 계속됐다면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분열을 노출했고, 미국과 다른 동맹국들에게 우려를 안겼다”고 진단했다.
외신들은 국가 리더십 부재 사태로 인한 폐해를 짚으면서 조기 대선을 통해 뽑힐 새 지도자의 과제도 조망했다.
CNN은 “오랜 위기로 세계 주요 경제국이자 미국 핵심 동맹인 한국이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있었다”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수십 년간의 외교정책 규범을 뒤엎고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해체하는 중대한 시점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WP도 “지난 몇 달간의 정치적 공백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하고 그가 한국의 주요 산업을 위협하는 새로운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는 시점과 겹쳤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해왔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한국 지도자들은 이를 반박하거나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비판했다.
조기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 외교 기조가 조정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미·일 3각 공조 체제가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WP는 “윤 전 대통령은 짧은 재임 동안 외교 정책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일본에 대한 식민지 시대 적대감을 떨쳐내고 미국·일본과 공조해 중국의 군사·경제적 부상과 북한의 핵 야망에 대응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 대통령이 현재 선두 주자인 이재명 대표처럼 진보 성향 민주당에서 나온다면 한국 외교 정책 방향은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부연했다.
WP는 “이 대표와 민주당은 미국, 중국과의 관계에서 보다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옹호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헌재가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됐다고 말한 뒤 “새 지도자는 국내 심각한 분열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증가하는 갈등 문제로 씨름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WSJ는 새 지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원활히 하는 동시에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증진하려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