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5년 간 산불 예방을 위해 2600억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같은 기간 대형 산불로 투입 예산의 7배가 넘는 1조8000억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형 산불이 벌어지면 이듬해에 산불 진화 헬기 등 관련 예산이 늘었다가, 산불 발생이 잠잠해지면 다시 예산이 삭감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기후변화로 대형 산불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안정적 예산 운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일 국민일보가 산림청의 연도별 예·결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산불방지 대책’ 사업 예산은 결산(지난해는 예산) 기준 총 2558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산불방지대책 예산은 579억원으로, 전년(624억원) 대비 45억원 삭감됐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운영(210억원), 산불 방지 홍보(15억원), 드론을 활용한 산림재해 감시(11억원) 등에 쓰이는 예산이다. 2020년 428억원에서 이듬해 493억원, 2022년 518억원, 2023년 495억원 등으로 해마다 차이를 보였다.
산불 주무부처인 산림청의 관련 예산은 예방을 위한 ‘산불방지 대책’을 비롯해 진화(산림헬기 도입·운영), 복구(산림재해대책비)까지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이중 산불진화 헬기 도입·운영 예산은 2022년 동해안 산불 사태 이후 이듬해 1477억원으로 전년(785억원)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다 지난해는 1123억원, 올해는 939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전국 대형 산불(피해면적 100㏊ 이상) 발생 건수가 2023년 8건, 지난해 0건에 그치자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
정부가 산불 방지·진화에 매년 1500억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산불 피해 규모는 이를 크게 웃돌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전국의 산불 발생 건수는 총 2609건, 피해액수는 1조8352억원에 달했다. 특히 2022년 동해안 산불은 피해액 1조3463억원의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다. 올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은 이보다 더 큰 피해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산불 예방·진화에 대한 지원 확대는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 지적사항이기도 했다. 2021년 국감에선 ‘정보통신기술(ICT) 등 신기술을 접목한 산불예방’ ‘K-산불방지대책 전환 추진’ 등이 개선 방향으로 제시됐다. 2022년에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처우 개선 방안’ 등이, 2023년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ICT플랫폼 설치 확대’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대형 산불이 잠잠할 때는 이런 관심도 잦아들었다. 지난해 산불이 279건(대형 산불 0건)으로 최근 5년 간 가장 적게 나타나자, 올해 산림헬기 도입·운영 예산은 전년 대비 16.4% 삭감된 정부안(938억원)만 통과됐다.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되던 산불 진화를 위한 대형 헬기 4기 추가 도입(172억원) 사업은 여야의 ‘감액 예산안’ 공방 속에 무산됐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