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새벽 4시 30분, 서울 동작구 강남교회(고문산 목사) 앞에선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30여명에 달하는 이들이 한밤중에 교회 앞에 모인 이유는 교회 장애인 부서 중 하나인 ‘다사랑부(20~35세 청년)’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비전트립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선 해외여행을 앞둔 학생들과 보호자들의 기대감으로 들떠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향한 설렘을 가득 안고 일본 나고야로 향했다. 국민일보는 2박 3일간 진행된 강남교회 다사랑부 비전트립에 동행했다.
다사랑부의 비전트립은 지난해 수련회에서 청년들이 써낸 설문조사에서 시작됐다. 당연히 놀이공원, 전시회장, 야구장 등 국내 장소를 쓸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갔다. 장애인 부서 담당 김부림 부목사는 “다사랑부를 맡게 된 후 청년들에게 가고 싶은 곳을 써보라고 했는데 청년 대부분이 호주, 일본 등 해외 국가를 써냈다”며 “비장애인 청년과 다를 바 없이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청년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를 나간 청년도 있었다.
그 무렵 익명의 성도가 2000만원을 후원한 것이 신호탄이 돼 전 교회적으로 후원이 들어왔다. 담임목사와 교회 성도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청년들과 섬김이에겐 일부 경비만 받고 보호자 비용은 교회에서 전액 부담했다.
헌신으로 이뤄 낸 행복
휠체어 4대를 동행한 여정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비행기 탑승까지 갈아탄 휠체어 횟수만 3번에 달했다. 또 비행기도 제일 먼저 타서 맨 나중에 내려야 했다. 이동이 불편한 만큼 짐도 남들보다 2~3배에 달했다. 이동 수단도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버스를 대여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나고야에 도착한 다사랑부는 첫 장소로 나고야성을 방문했다. 나고야성은 일본 3대 명성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161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건축돼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막부의 중요한 요새로 사용됐다.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 엄희민(21)씨에게 방문 소감을 묻자 핸드폰 메모장을 보여줬다. “나고야에 도착했을 때 저의 감정은 신나고 기대가 많이 됐어요. 나고야성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문화에 대해 알게 됐죠. 교회랑 해외를 나간 건 처음인데 너무 행복했어요.”
저녁엔 조별로 나눠 자유시간을 보냈다. 틀에 갇힌 일상을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교회 측의 배려였다. 김 목사는 “장애가 있는 청년일지라도 각자 추구하는 것이 있는 동등한 인격체”라며 “청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교회에서 더 많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튿날엔 나고야항 수족관을 방문했다. 청년들은 돌고래와 바다거북 등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양 동물을 보면서 아이같이 행복해하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신형(21)씨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다양한 고래를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나고야성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이씨를 담당하는 섬김이 이선희(50) 집사는 “비장애인이 장애인한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별로 다른 점이 없다”면서 “(비전트립을 통해) 한 인격체에 대해 깊이 알아가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이어 “비신자인 보호자와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도도 할 수 있어 기뻤다”고 덧붙였다.
목숨 바쳐 지킨 신앙
다사랑부는 수족관에서 발길을 돌려 ‘에이코쿠지 기리시탄 유적박물관’ 찾았다. 나고야는 기독교 박해 흔적이 다른 도시보다 강렬하게 남아 있다. 유적박물관은 16세기 초 일본에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박해를 받았던 장소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흔적이 남아있는 순교지다. 1664년 기독교인 2000여명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협소한 공간에 가쿠레 기리시탄(에도시대에 몰래 신앙을 지켰던 기독교인)들의 유물 몇 개가 전시돼있었다. 또 참수된 기독교인들의 공양탑과 무덤이 마당 한 쪽에 마련됐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히가시베츠인’ 절의 웅장함과 크게 대조됐다.
일본에 처음 복음을 전한 건 스페인 출신의 프란시스코 자비에르(1506~1552) 선교사다. 그는 가톨릭 신부로 1549년 가고시마 항구를 통해 입항해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일본 선교의 시초다. 16세기 일본 기독교는 성도 수가 50~75만명에 이를 정도로 부흥했지만, 일본의 다신교적 문화와 충돌하면서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일본은 기독교를 하나의 위협세력으로 간주하면서 신앙인을 처형했다.
다사랑부 청년들과 섬김이들은 순교의 흔적을 둘러보며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탄식을 자아내기도 했다.
마지막 날인 30일엔 나고야 소아이 그리스도교회(미야자키 사토시 목사) 주일 예배에 참석해 현지 성도들과 교류했다. 특별히 찬양 ‘약할 때 강함되시네’를 특송으로 준비했다. 다사랑부 성도들이 서툰 일본어로 찬양을 하자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리는 일본인 성도가 눈에 띄었다.
관심에서 시작된 사역
강남교회의 장애인 사역을 열정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의 5대 비전 중 하나가 ‘장애인과 함께하는 교회’일 정도로 장애인 사역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장애인 부서도 초·중·고등학생으로 이뤄진 ‘사랑부’와 청년으로 구성된 ‘다사랑부’, 장년으로 이뤄진 ‘밀알부’가 있다. 교회 대대적으로 내려온 장애인 사역을 향한 비전은 교회 전체에 퍼져 성도들의 관심과 기도, 후원을 끌어냈다.
변자영(27)씨는 “이번 비전트립은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고 자신감을 얻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교회 친구·동생들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음에도 기회가 생기면 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장애인 사역은 무조건 헌신하는 사역”이라며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님은 평생 아이의 장애를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또한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퇴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며 “부모의 부담을 교회가 덜어준다면 더 많은 청년이 교회로 나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고야=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