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호 관세’ 앞두고 무역장벽 보고서 발표…한국 자동차, 소고기 수입 제한 등 지적

입력 2025-04-01 06:51 수정 2025-04-01 08:5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2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백악관 집무실에서 관세 부과 행정 명령에 서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 관세 부과가 임박한 가운데 미 무역대표부(USTR)가 전 세계 무역 상대국의 무역 장벽을 망라한 ‘2025 국가별 무역 평가 보고서(NTE)’를 3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자동차 시장 환경 규제, 미국산 소고기 30개월령 이상 수입 제한 문제, 유전자변형작물(GMO) 규제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NTE는 매년 발간되는 보고서로 지난해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해당 보고서를 관세 정책의 주요 참고 자료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USTR은 이날 국가별 무역 장벽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했다. 표지 포함 전체 397페이지 중 한국 현황은 7페이지 분량으로 기술됐다.

보고서는 우선 자동차 시장과 관련해 “미국 자동차 기업의 한국 시장 접근성 증대가 미국의 우선순위”라며 “미국 정부는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요구되는 배출가스 관련 부품 변경 보고 제도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고 서술했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부품 관련 변경을 할 때 인증서를 발급받거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명확성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담겼다. 보고서는 또 또 자동차 수입과 관련한 법을 위반할 경우 한국 세관 당국이 업체를 형사 기소할 수 있어 한국 업체와는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 제약·의료 기기 산업계가 한국의 가격 책정과 변제 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하고, 정책 변경 시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우려한다고 언급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행정명령 서명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USTR은 ‘전자 상거래 장벽’ 항목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법안 등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해외 콘텐츠 공급자(CP)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게 네트워크망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다수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고 지적하며, 미국이 지난해 한 해 동안 이 문제를 한국 정부와 협의했다고 언급했다.

한국이 위치 기반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제한하는 것도 문제 삼았다. NTE는 “외국 기반 기업은 실시간 교통 정보나 내비게이션 기능을 완전하게 제공할 수 없어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다”며 “전 세계 주요 시장 중 한국만이 이런 제한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보호되는 데이터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 국방부의 ‘절충교역(offset)’도 처음으로 명시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국방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 및 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계약 가치가 1000만 달러(약 147억원)를 초과할 경우 외국 계약자에게 절충교역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절충교역은 외국에서 1000만 달러 이상의 무기나 군수품, 용역 등을 수입할 때 반대급부로 기술이전, 군수지원 등을 받아내는 교역 방식이다. 보고서는 절충 교역을 단 두 문장으로 짧게 거론했지만, 추후 무역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이를 쟁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축산업계의 단골 민원인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문제도 거론됐다. 보고서는 2008년 쇠고기 시장 개방 당시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을 “과도기적 조치”라고 설명하며 “16년간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이 월령과 관계없이 육포, 소시지 등 가공된 소고기 제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고도 거론했다.

USTR은 무역법에 따라 무역장벽 보고서를 매년 3월 말 발표한 뒤 대통령과 상·하원에 제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 발표를 이틀 앞둔 가운데 USTR 보고서가 주요 참고 자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함께 관세율 책정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인사다.

그리어 대표는 이날 “현대 역사상 미국 수출업체들이 직면한 광범위하고 유해한 해외 무역 장벽을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잘 인식한 미국 대통령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 아래, 현 정부는 이런 불공평하고 상호주의에 어긋나는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공정성을 회복하고 열심히 일하는 미국 기업과 근로자를 세계 시장에서 우선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