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방국과 적성국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관세 인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인공지능(AI) 업계에서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관세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까지 관세 범주에 들어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미국 정부의 관세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간 무역 업계에서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프로그램 등 물리적으로 국경을 통과하지 않는 수출품은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1996년 체결한 정보기술협정(ITA)은 광범위한 소프트웨어와 IT 제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하도록 강제한다. 미국과 한국의 경우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이중으로 체결하고 있어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세 적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지켜온 무역협정과 관행을 깨고 광범위한 관세 정책에 나서며 이런 보호막도 무력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ITA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컴퓨터 제품과 반도체도 관세 대상이 아니지만 트럼프는 ‘국가안보나 불공정 무역 상황’이라는 WTO의 예외 조항을 활용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관세 부과에 대한 근거는 미국 국내 무역 관련 법률인 ‘섹션 301’이다. 이는 미국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는 무역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미국 기업이 수출하는 데 있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다.
미국과 관세 전쟁의 선봉에 서 있는 캐나다는 이미 소프트웨어 관세 가능성에 대비해 법률적 검토에 나서고 있다. 본래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캐나다·멕시코 제품에 대한 관세도 부과해선 안 되지만, 이 원칙조차 깨진 상황이다. 캐나다의 법무법인 덴튼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상대국에 부과하는 관세 범위에서 소프트웨어가 제외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덴튼 분석에 따르면 관세 품목 리스트에 ‘8523.49 코드’가 들어갈 경우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세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자제품·미디어·소프트웨어에 대한 품목 코드다.
국내에서도 이 때문에 미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기업들 사이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AI 플랫폼 수출을 검토 중인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다른 제품처럼 AI 기반 산업을 수출하는 기업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다”며 “만약의 경우 한국에서 AI 기업이 자생할 수 있도록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발전 가능한 ‘소버린 AI’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