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42) 고린도 교인 가이오와 같은 할머니

입력 2025-03-31 14:25 수정 2025-03-31 16:57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1:2)

평신도 사역자란 말이 있습니다. 낙도에서 전도하면서 비록 전문 교육을 받거나 어떤 자격을 부여받지 못했어도 전도의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는 성도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옛날 고린도에 살았던 신자 가이오(고전 1:14)를 만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나중된 자를 5시에 부른 종, 이름 없는 사람,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주님은 보길도에 살면서 늦게 믿음을 가진 박이순 할머니를 전도자로 사용하십니다.

보길도에 올해 91세 되시는 박이순 할머님이 계십니다. 어른들 간의 승낙에 무조건 따라야 했던 옛날 시골 법칙에 순종해 18살에 시집오셔서 눈물겨운 고생길을 걸어오셨습니다. 박 할머니는 가난을 이겨보려고 손발이 다 닳도록 일에 묻혀 살면서 잠시도 행복이 뭔지 모르며 살았다고 합니다.

동갑내기 신랑은 25세 되던 해 군에서 배운 나쁜 술버릇을 가지고 술만 마시면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폭력적인 습성으로 가족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술에 취한 날엔 할머니는 산속으로 도망쳐 바위틈에서 떨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살던 남편은 나이 마흔에 5남매 어린 자녀를 맡겨놓고 저 세상으로 휙 가셨답니다.

섬 아낙들 대부분 그런 모진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박 할머니도 그날부터 어린 자녀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안 먹고 안 입으며 절약했지만, 살림살이는 늘어나지 않았고 구부러진 허리만 선물로 받아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제야 왜 살아야 하는지, 행복은 어디 있는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동광교회 사모님이 참 좋아하시는 박이순(가운데) 할머니와 한 살 동생인 박옥순(오른쪽) 조카를 전도에 불이 붙게 하셨습니다.

한글을 50% 정도 이해하시는 할머니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다가 자녀들 다 출가시킨 다음 홀로 사시면서 집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섬은 대부분 혼자 기거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렇게 할머니처럼 완전하게 자기 집을 오픈하고 그 목적을 전도와 하나님 사랑에 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할머니 집 부엌 있는 모든 음식과 냉장고는 항상 열어놓고 계셨고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골 인심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분수에 넘치는 생활도 아닙니다. 할머니는 나름 사람을 끄시는 힘이 있습니다. 냉장고가 가득 차지도 않고 쌀가마가 항상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날그날 있는 그대로 나누십니다. 무엇보다도 진실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그 목적이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전도를 유도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예배가 이루어지는 박 할머니 가정은 2000년 전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의 집과 흡사합니다.

할머니 집에는 늘 7~8명의 이웃들이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이 피어나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붐비는 가운데서도 절제가 있어서 절대로 술을 마신다거나 화투놀이를 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마음이 상할 어떤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모든 것이 집주인인 91세 할머니의 평신도 사역 현장임이 분명합니다.

저는 오며 가며 작은 과자 봉지를 넣어드리는 게 전부이지만 언제나 풍성한 할머니 네 집은 마치 요한3서에서 사도가 진심으로 축복했던 가이오가 복음을 전하는 나그네들을 헌신적으로 섬기며 대접한 그 이야기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낙도 중에서도 제일 늦게 도로가 건설되고 전기가 마지막에야 들어온 촌동네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가이오를 만나는 것 같아 가슴이 떨려옵니다.

제가 처음 낙도를 찾아간 목적은 제 자신이 가이오가 되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보다 더 귀한 성품을 지니신 할머니를 변화시켜 가이오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거절하며 예수님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작은 상처도 넉넉히 아물게 하십니다.

낙도에서 전도가 이루어지려면 탁월한 성경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하거나 철철 넘치는 물질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을 사용하셔서 2000년 전 마케도니아인 가이오 이야기가 사실임을 입증하십니다. 여기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보길도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