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버린 교회 “잿더미 위에서 드린 감사 고백”

입력 2025-03-30 17:06
전소된 빛과소금교회 전경. 최병진 목사 제공

“모든 것이 다 타버렸지만, 하나님 한 분으로 감사하겠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영덕군까지 번져 교회와 사택을 모두 잃은 빛과소금교회. 최병진(43) 목사와 그의 가족은 빈 몸으로 대피해 생명을 건졌다. 최 목사는 개척교회 목회자로 수해와 화재라는 시련을 연이어 경험하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다. 최 목사는 3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피해 입은 당시 급박한 상황을 들려줬다.

“지난 25일 저녁 6~7시경 대피령이 내려졌어요. 청송에 있다가 혼자 있는 아들을 데리러 왔는데 불이 빠르게 번진다고 해서 옷만 챙겼죠. 솔직히 처음에는 괜찮을 줄 알았어요. 불이 그렇게 빨리 올까 싶었는데….”

세찬 바람으로 인해 불길이 예상보다 빠르게 번졌다. 최 목사 가족은 영덕 강구면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대피했지만 밤 8시경 영덕군 전체에 대피령이 내려지면서 다시 대피해야 했다.

“밤에 정전되고 통신이 끊겼어요. 영덕에서 포항 방향으로 가는데, 신호등도 다 꺼지고 피난 행렬이 이어졌죠. 바람이 너무 심해서 차들이 휘청거릴 정도였어요. 특히 9살 딸아이가 너무 무서워해서 안타까웠습니다.”

불탄 신디사이저. 최병진 목사 제공

그날 밤 12시 40분경 지인으로부터 집이 다 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현장을 찾았을 때 상황은 처참했다.

“아내가 주저앉아 울었어요. 저까지 무너지면 안 되니까 ‘걱정말라. 하나님이 더 좋게 하실 거다’라고 위로했습니다. 아이들 생각해서라도 강해져야 했죠.”

2008년 개척된 교회는 2012년 최 목사가 담임 전도사로 부임했을 때 교인이 한 명도 없었다. 홀로 예배를 드리다 결혼 후 아내 김지혜(43) 사모의 피아노 교습소에서 예배를 이어갔다.

최 목사는 2018년 태풍 ‘콩레이’로 수해를 입었을 때부터 목공 기술을 활용해 지역 주민들을 섬겼다. 그가 가진 목공 기술로 수해 피해 이웃들에게 원목 가구를 제작해 주고 실내장식을 도와주면서 교회의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2023년 5월 반복되는 수해를 피해 경북 영덕군 지품면으로 이사했지만, 이번 산불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목공 공구와 목재는 물론, 신학 서적과 주석서 등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현재 최 목사 가족은 어머니 집에서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화재 직후에는 아이들 옷이 하나도 없어 등교가 걱정됐지만, 지역 학부모들과 지인들이 도움을 주어 해결됐다.

최병진 목사의 불탄 주석서와 신학 서적. 최 목사 제공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임시 거주지예요. 가전제품도 필요하지만 놓을 곳이 없는 상황입니다. 교단에서는 쌀과 이불, 오래 두고 먹을 통조림류를 보내주셨어요.”

최 목사는 40년 이상 감리교회를 섬긴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2005년 태풍 ‘나비’로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했다고 한다.

“저도 3년의 수해를 겪으며 아버지가 불렀던 그 찬양으로 고백했어요.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교회가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