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어느 어머니의 눈물과 한숨

입력 2025-03-30 18:13

“변호사님, 경찰서에서 전화 왔습니다. 아이가 잡혔다네요. 그런데 아이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답니다.”
“지금이라도 잡혀서 다행이네요.”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도망 다니는 동안 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향정신성의약품 판매를 글을 올려서 잡힌 건가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경찰관 말로는 여러 건 올렸다네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스무 살을 넘긴 성인임에도 어머니가 꼬박꼬박 ‘아이’라고 부르는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그 아이가 강원도 소재 구치소에 수감 되어 있을 때이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깊었다. 먹고살기 바빠서 아이에게 소홀히 해서 삐뚤어졌다고 믿었다. 아이의 일탈이 자신의 탓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를 뿌리칠 수 없어서 구치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아이는 처음 구속된 것 치고는 무척 평온했다. 마치 잘 되었다는 듯이.

아이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경제 사정이 어려워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틈틈이 건설현장 막노동을 했다. 그러나 막노동 수입만으로는 어머니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일확천금의 환상을 품고 인터넷 도박에 뛰어들었다. 막노동을 하고 받은 노임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모두 잃었다.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계속 인터넷 도박을 했으나 결국 2000만원이 넘는 빚만 남았다.

어머니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며 어렵게 돈을 마련해서 빚을 갚아줬다. 아이는 어머니께 미안하기도 하고 인터넷 도박의 달콤함을 끊을 수 없어서 집을 나왔다. 가출 후, 아이는 쉼터나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안경을 써도 2미터 앞까지만 볼 수 있는 아이의 시력 때문에 결국 막노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태까지 되자 아이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SNS에 ‘스틸녹스’나 ‘디에타민’ 등 향정신성의약품 판매 광고를 올렸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경찰의 함정수사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이 매수인을 가장해 현장에서 체포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아이는 구속되었으나, 아직 어린 초범이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반성문을 여러 차례 제출한 덕분에 집행유예의 선처를 받고 구속 5개월 만에 풀려났다.

아이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도박중독치유센터에서 치료를 받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의 개과천선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아이는 또다시 향정신성의약품 광고를 올렸다. 이번에는 약이 없는데도 팔겠다고 올려서 사기 혐의까지 추가됐다.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 덕분인지 아이는 수사와 재판에 성실히 응했다.

마침내 실형 선고가 예상되는 선고기일. 아이가 사라졌다. 5개월 동안 구속되어본 경험 때문인지 아이는 주저함 없이 도망쳤다. 그러나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 있겠는가. 6개월 만에 붙잡혔다. 어머니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경찰서로 향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