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장로님, 산불 지원 나가셨다고 소식 들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안전히 무사히 잘 복귀하시길 바랍니다.”
오전 11시 25분. 2분 만에 회신이 왔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지금 기상 상태가 불량해서 지상 대기 중입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속히 산불도 잡히고 장로님도 복귀하시길 바랍니다.”
오전 11시 28분, 김 목사는 교회 단체 카톡방을 통해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박 장로님이 산불 진압에 지원을 나갔는데 헬기로 산불을 진압하는 과정이 매우 위험하다고. 속히 산불이 잡혀서 장로님이 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한다고. 교인들은 한마음으로 답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안전하게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김 목사는 성도들의 기도 메시지를 캡처해 오후 1시 20분, 박 장로에게 전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박현우(73) 장로는 지난 26일 오후 1시경 경북 의성군의 야산에서 헬기를 타고 산불을 진화하다 추락해 순직했다. 박 장로가 운행한 헬기는 강원도 인제군에서 화재 진압 지원을 나온 S-76B 기종이었다. 이 헬기는 1995년 7월 미국에서 생산돼 30여년간 운영됐다. 담수 용량은 1200ℓ였다. “작업 중 헬기가 전신주 선에 걸렸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장로님은 평소 연락드리면 바로바로 답장을 주시던 분이셨어요. 회신을 기다리다 장광자 권사님께 전화가 왔어요. ‘에어팰리스(회사)에서 헬기가 추락해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고….”
김성민 김포수정교회 목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장로와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은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들려온 비보였다. 그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25년간 목사로 살면서 수많은 장례를 치르고 성도들을 위로해왔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고 했다.
김 목사는 박 장로와 각별한 사이였다. 2010년 인천 수정교회에서 부목사와 안수집사일 때 처음 만났고 2015년 김포수정교회가 분립 개척되면서 더 돈독해졌다. 김포수정교회 1호 장로인 박 장로는 2022년 은퇴장로가 될 때까지 교회 재정 일을 도맡았다. 박 장로가 출장지를 오갈 땐 김 목사가 운전했다. 지난 1월 강원도 인제로 향하던 차 안에서 박 장로는 “가정과 교회를 위해 앞으로 3년은 더 일하고 싶다”고 했다. 박 장로는 건강 관리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김 목사는 “장로님은 조종사 건강검진을 통과하기 위해 매일 아침 운동을 하셨다”며 “술 담배는 기본으로 안 하시고 식생활까지 조절하시면서 건강 관리를 사명으로 여기셨다”고 말했다.
모든 자리에서 묵묵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낸 신앙인.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은 한결같았다.
채동수 김포수정교회 안수집사. 박 장로가 장로 직분을 받을 때 그는 안수집사가 됐다. 박 장로와 함께 김포수정교회 개척 멤버다. “장로님은 묵묵히 모범을 보이는 분이셨어요.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우면 말없이 지원해주시고 교인들이 어떤 사역이든 제안하면 든든하게 뒷받침해주셨어요. 일흔이 넘으시고 명예장로가 되셨지만 젊은 집사는 물론 청년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주셨어요. 따뜻한 아버지 같은 분이셨지요.”
윤치호 에어팰리스 부사장. 박 장로와 2023년부터 함께 일했다. “박현우 기장님은 산불 진화 작업으로 해외 파견까지 다녀오신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어요. 2022년엔 경북·강원 산불 진화 유공자로 정부 포상도 받으신 걸로 알아요. 능력만큼이나 인품도 훌륭하셨죠. 기장님께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걸 모르는 직원들은 없을 겁니다. 제게 전도하신 적도 있어요.”
아내 장광자 김포수정교회 권사. “어제(29일) 남편을 떠나보냈는데, 처음 같이 교회 갔던 날이 떠올라요. 결혼하고 6년 뒤 제가 예수님 만나고 남편에게 처음 복음을 전했을 때 남편이 단번에 ‘오케이’했어요. 그렇게 1984년부터 주님 섬기며 함께 살아왔죠. 우리 남편은 신앙인으로서 늘 자기 본분을 다했어요. 가정에도 아빠로 남편으로 늘 성실했고요. 남편은 ‘은퇴하면 그동안 미뤄둔 여행 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고 수석도 모아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계획하고 하나님 계획은 다른가 봐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원망스럽진 않아요. 우리 부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거잖아요.”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