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국가 베네수엘라가 공공기관의 주간 법정 근로시간을 13.5시간으로 대폭 감축했다. 베네수엘라에는 세계에서 원유가 가장 많이 매장돼 있지만 국영 석유 회사의 부실 경영 등으로 연료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정전 사태가 잦아지자 이런 고육지책을 마련한 것이다.
30일 영국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는 관영 언론을 통해 배포한 성명에서 “기후 위기로 인한 세계적 기온 상승 추이를 고려해 공공기관의 근로시간을 오전 8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이 나라 정부가 법정 근무일마저 일주일에 사흘로 줄이면서 주간 법정 근로시간은 13시간30분에 그치게 됐다. 정부는 또 전등 사용을 자제하고 에어컨 온도를 올리며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전원을 끄라고 당부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의 이유로 기후 위기를 꼽았지만 사실은 전력 소비를 줄여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나라의 국영 석유 회사 PDVSA(Petroleos de Venezuela, S.A)는 부실 경영과 시설 노후화, 미국의 제재 등이 겹쳐 원유를 필요한 만큼 휘발유로 정제하지 못하고 있다. PDVSA 또한 석유와 가스 생산, 정유소 직원 등을 제외한 행정직 직원의 법정 근로시간을 정부 명령에 따라 단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는 과거에도 전력 소비가 늘어나는 여름에 정전 사태를 자주 겪었다. 특히 2019년에는 대규모의 블랙아웃이 발생해 전국에 일주일가량 휴교령이 내려졌다. 2019~2021년에는 정전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받던 환자 233명이 숨진 바 있으며 지난해에도 정전으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이 나라 정부는 “정전 사태는 외부 세력의 파괴 공작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발전소를 돌릴 연료가 부족했던 것이 실제 원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