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 파트너스(이하 MBK)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28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지난 임시주총과 같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면서다. 다만 영풍·MBK 측이 상호주 제한과 관련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등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이날 서울 용산구 몬드라인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 8명이 추가로 선임됐다고 밝혔다. 최윤범 회장 측이 추천한 이사는 박기덕·김보영·권순범·제임스 앤드류 머피·정다미 등 5명이 선임됐고 MBK·영풍 측은 권광석·강성두·김광일 등 3명이 선임됐다. 이로써 최 회장 측은 기존 이사진을 포함해 11대 4로 이사회 과반 장악을 유지했다.
영풍 보유 의결권이 제한된 채 열린 이날 주총에서는 이사 수를 19인으로 상한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이는 최 회장 측이 요구한 안건으로, 지분율에서 앞선 영풍·MBK 측이 향후 수시로 임시주총을 열어 신규 이사를 선임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당초 MBK·영풍은 고려아연에 ‘이사 수 상한’이 없는 점을 공략해 많은 이사를 진입시켜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려 했다. 임시주총 이후 업무효력이 정지된 4명이 복귀하면 고려아연 측은 19명 중 15명의 이사회를 확보하게 된다.
최 회장 측이 영풍의 지분 25.42% 의결권을 묶어놓은 데 성공하면서 승패가 갈렸다. 앞서 최 회장 측은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썬메탈코퍼레이션(SMC)이 영풍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게 해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이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하자 SMC의 모회사인 썬메탈홀딩스(SMH)에 SMC가 보유한 영풍 지분을 현물 배당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상호주 관계를 형성했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이에 반발해 의결권 행사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전날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이날 고려아연 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영풍은 ‘주식배당’ 카드로 의결권을 부활시키려 했다. 영풍은 전날 주총에서 증자를 통해 주주들에게 1주당 0.04주를 배당해 SMH의 영풍 지분을 희석시켰다. 현재 ‘고려아연→SMH→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상호주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돼 있는데, 이번 주식배당으로 SMH의 영풍 지분율이 10% 미만으로 내려가면서 이 고리가 해제된 것이다. SMH는 영풍의 정기주주총회 기준일(2024년 12월 31일) 당시 주주가 아니었으므로 배당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이 밤사이 마지막 방어에 나섰다. 케이젯정밀(구 영풍정밀)은 이날 보유하고 있던 영풍 주식을 추가로 SMH에 넘겨, SMH가 보유한 영풍 지분을 10% 이상으로 재차 높였다. 이를 근거로 이날 주총 의장을 맡은 박기덕 사장은 영풍 의결권을 또 한 번 제한했다. 주총장에서 영풍·MBK 측은 선메탈홀딩스의 주식 매입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의했으나 결국 의결권은 행사하지 못했다.
다만 영풍·MBK 측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 즉시 항고에 나서는 등 법적 대응을 이어갈 예정이다. 순환출자 고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향후 MBK 연합의 요구로 임시 주주총회가 다시 열리게 되면 영풍·MBK 연합 측 와이피씨가 보유한 지분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지 여부를 놓고도 법적 해석이 분분하다. 영풍·MBK 측은 지난 8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526만2450주(지분 25.4%)를 신규 유한회사인 와이피씨에 현물 출자해 추후 주총에서 의결권 제한을 피하기 위한 구조를 마련했다. 영풍·MBK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즉시항고와 이의제기 등 법원에서 효력을 다툴 것이며 시간이 걸려도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