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년 전 미국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 지정을 두고 한·미 협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미 제네바 협의 때는 미국 측에 한국 ‘패싱’ 우려를 전달하려던 정황도 공개됐다.
28일 외교부가 공개한 1994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1993년 12월 제1차 한·미 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에서 미국의 민감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는 대응책을 준비했다. 당시 정부는 관계부처 대책회의에서 “한국을 북한과 같이 민감국가로 분류하는 것은 부당하며 앞으로의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 장애 요인으로 간주된다”는 기조로 미국 설득을 논의했다.
미국은 1981년 1월 민감국가 제도 시행 후 한국을 포함했다가 1994년 7월 제외했다. 어떤 이유로 지정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바이든 정부에서 DOE가 한국을 민감국가에 지정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한·미가 과학기술 협력에 차질이 없다고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30년 전에는 정부가 과학기술 협력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대책회의 자료를 보면 한·미 과기공동위에서 해당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에 대해 “민감국가로 지정되는 여러 이유들(핵비확산, 국내불안정, 테러리즘 등)이 나열돼 있으나 한국이 어떤 이유로 민감국가에 지정됐는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다. 외교부 내부 검토 자료에는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70년대 한국의 핵 정책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한국의 핵 포기 의지를 강조한다는 쪽에 초점을 맞췄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가 공개한 또 다른 문서에는 1994년 한국이 북·미 제네바 합의 과정에서 빠진 것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하려던 내용도 확인됐다. 김 대통령은 1994년 당시 ‘3단계 북·미 고위급 회담’(8월 5~12일)이 끝난 직후인 8월 17일 클린턴 대통령과 38분가량 통화했다. 고위급 회담에서는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경수로 지원, 원자로 건설 동결 등 주요 사항 합의가 이뤄졌다.
당시 통화를 위한 ‘말씀자료’에는 김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우리가 배제된 채 미·북 간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실을 굴욕적으로 생각하는 의견이 일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미국이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론마저 있어 우리 정부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해당 문건은 통화 준비용으로 작성됐기에 실제 통화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통화 후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때는 항의 내용 언급이 없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