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덮친 마을, 주민 돕다 노모 잃은 아들…“평생 후회”

입력 2025-03-28 08:44
26일 경북 영양군 영양군민회관 대피소에서 산불로 인해 대피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산불이 덮친 경북 영양군의 한 마을에서 이웃 주민들을 대피시키다가 정작 구순이 넘은 노모를 끝까지 챙기지 못한 아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영양군민 A씨는 “뒤늦게 엄마를 찾으러 갔는데 이미 늦었더라. 나는 엄마도 못 지킨 아들”이라며 “우리 엄마 좋은 데 갔을까 매 순간 생각한다”고 28일 연합뉴스에 토로했다.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안동을 넘어 영양 A씨의 마을 앞 산등성이까지 번진 것은 지난 25일 오후 9시30분쯤이었다.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불기둥은 강풍에 실려 육안으로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A씨는 황급히 노모를 자택에서 2㎞ 남짓 떨어진 이웃집으로 피신시킨 뒤 이들에게 “다 같이 빨리 대피하라”고 당부하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갔다. 고령자가 대부분인 주민들 상당수가 여전히 마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회관에 도착한 지 5분도 안 돼 30가구가 사는 마을 전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장에게 연락해 마을 방송을 하게 한 A씨는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치고 길 안내를 했다.

26일 경북 영양군 입암면 방전리 야산에서 입암면 의용소방대원이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A씨는 이동 수단이 없는 마을 주민 5명을 차에 태워 인근 초등학교 대피소까지 이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이웃집 부부와 함께 대피했어야 할 모친이 대피소에 없었던 것이다.

부리나케 다시 마을로 돌아갔지만 이미 산불이 온 마을을 집어삼킨 뒤였다. A씨는 “마을 입구부터 연기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는 데다 바람도 엄청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며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마을로 못 들어가게 나를 붙잡았다”고 돌이켰다.

옷가지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이재민이 된 A씨는 뒤늦게 모친의 시신을 찾고서는 같이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했다. 어머니를 끝까지 챙기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면서도 남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A씨는 “평생 상상도 못 했던 산불이었다. 다른 주민들도, 진화대원들도, 공무원들까지 모두 경황이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은 하루빨리 장례식을 열어 빨리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