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사교육 그린 ‘라이딩 인생’…“만 36개월부터 시작한다는 말에 충격”

입력 2025-03-27 16:34 수정 2025-03-27 22:18
드라마 '라이딩 인생' 스틸컷. 스튜디오지니 제공

최근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코미디언 이수지가 대치동 학부모를 패러디한 ‘제이미맘’ 영상부터 KBS ‘추적 60분’에선 ‘7세 고시’를 다뤘고, 정부가 처음으로 유아 사교육비 현황을 조사해 공개하는 등 영유아 사교육 광풍의 이면이 이곳저곳에서 조명된 탓이다.

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초등학교 입학 전 더 좋은 영어유치원, 더 수준이 높은 반으로 올라가기 위한 레벨테스트를 준비하는 일명 ‘7세 고시’를 현실감 있게 그리며 주목받았다. 지난 25일 종영 회차에서는 3.3%로 최고 시청률도 찍었다. 지상파 주말드라마도 시청률 10%를 넘기면 선방했다는 평가를 듣는 상황에서, ENA 월화드라마임을 감안하면 좋은 성적이다.

김철규 감독. 스튜디오지니 제공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지니 사무실에서 김철규 감독과 성윤아, 조원동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감독은 “이런 상황이 겹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 문제가 우리 현실에서 상당히 큰 부분이 됐고, 책상에 올려놓고 관심 두고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는 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라이딩 인생’은 일도 육아도 잘하고 싶은 열혈 워킹맘 정은(전혜진)과 ‘7세 고시’를 앞둔 딸 서윤(김사랑),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손녀의 학원 라이딩을 맡게 된 할머니 지아(조민수) 3대 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먼저 원작 소설을 접해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는 성 작가는 “라이딩을 잘 몰라서 대치동부터 가서 학원 원장님께 여쭤봤다. ‘제가 7세 엄마라 생각하고 도움을 주시면 좋겠다’고 첫 질문을 꺼냈는데, 돌아온 답이 ‘7세요? 만 36개월부터 시작해요’였다”며 “큰 충격을 받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이후에는 학원 원장님과 라이딩하는 엄마들을 만나며 디테일을 채웠다”고 회상했다. 라이딩 경험이 있는 조 작가는 이야기에 현실성을 입혔다. 그는 “저와 라이딩을 함께 했던 분들 중에 할머니 세 분이 계셨다. 그분들과 나눈 이야기를 대본에 녹였다”고 했다.

드라마 '라이딩 인생' 스틸컷. 스튜디오지니 제공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유아 사교육을 소재로 다루는 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 작업이었다. ‘7세 고시’ ‘4세 고시’라 불리는 사교육 시장을 몰랐던 부모에겐 이런 시장이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 될 수도, 반대로 열심히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부모를 비판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세 사람은 “어느 한쪽을 응원하거나 비판하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라이딩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본 건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아이들의 상태는 괜찮은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집중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성 작가는 “대치동에 갔을 때 학원 간판만큼이나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간판이 눈에 띄었다”며 “이를 위해 원작에선 사서였던 지아의 직업을 미술치료사로 바꾸고, 아이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라이딩 인생' 스틸컷. 스튜디오지니 제공

치열한 영유아 사교육 현장을 그린 ‘라이딩 인생’이지만, 그 위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결국 가족 간의 소통이었다. 힘들지만 1등 하면 엄마가 좋아하니까 꾹 참았던 서윤, 외롭고 서운했지만 홀로 일하는 엄마가 걱정돼 내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정은, 늘 미안했지만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지아. 세 모녀는 서로를 향한 진심을 말하지 못한 채 곪아갔던 마음을 뒤늦게나마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해나간다. 그 모든 마음은 “내 딸, 혼자 크게 해서 미안해”라는 지아의 한 마디에 함축됐다.

성 작가는 “드라마를 보면서 저희 엄마가 ‘너도 힘들었어?’라고 물어보시더라. 그 얘길 듣는 순간 울컥했다”며 “이 드라마가 다른 시청자들에게도 소통의 매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