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상품화 논란 ‘언더피프틴’, 오해라지만…“대중 감수성 간과”

입력 2025-03-25 17:25
'언더피프틴' 티저 영상 갈무리. 크레아 스튜디오 제공

만 15세 이하로 구성된 ‘5세대 글로벌 걸그룹’ 제작을 목표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피프틴’이 방영도 전에 아동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다. 참가자들의 기본 정보를 담은 이미지와 방송 티저 영상 등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른처럼 화장하고 옷을 입은 채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담겨서다. 특히 아이들을 상품처럼 보이도록 이미지에 바코드를 삽입해둔 것이 상품화 논란을 부추겼다. 참가자들은 2009~2016년생으로 구성됐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크레아 스튜디오 측은 ‘언더피프틴’을 소개하며 “아이돌을 시작하기엔 아직 어리다는 어른들의 걱정이나 편견을 완전히 깨줄 만큼 꿈에 대한 의지와 소신이 확고한 요즘 세대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재능이 있고, 자신의 꿈에 확고한 의지가 있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공개된 콘텐츠들은 이와 거리가 멀어 보였던 탓에 비판이 더욱 거셌다. 일각에서는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황인영(가운데) 크레아 스튜디오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MBN 걸그룹 오디션 '언더피프틴'(UNDER15) 긴급 보고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크레아 스튜디오는 25일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 코리아에서 긴급 보고회를 진행했다. 황인영 대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미디어 환경에서 자랐고, K팝이 전 세계 문화의 기준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K팝 구조에서는 만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꿈과 재능이 있어도 제도의 벽 때문에 꿈을 키워나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재능 있는 알파 세대에게 오디션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들의 재능을 보여줄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언더피프틴’은 ‘오디션은 악마의 편집, 걸그룹은 성 상품화’라는 도식을 깨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에 대한 성 상품화 지적에 대해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상반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던 것이 ‘어른을 흉내 낸 섹시 콘셉트’로 오해를 받은 것이란 설명이다. 황 대표는 “최근의 아이돌 콘텐츠는 10년 전과 많이 다르다. 10년 전에는 섹시 콘셉트가 있었지만, 지금의 트렌드는 그렇지 않다. 알파 세대가 멋지고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무대 역시 그런 모습이 아니다”라면서도 “시청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미비한 게 없는지 다시 숙고할 기회와 시간이 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논란이 된 바코드 역시 요즘 청소년들의 학생증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더피프틴' 참가자들의 정보를 공개한 티저 이미지. 크레아 스튜디오 제공

이날 긴급 보고회에서 언론에 공개한 20여분의 방송분에서는 힙합 스타일 혹은 K팝 아이돌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나왔다. K팝 가수들로 구성된 심사단은 참가자들의 출중한 실력에 감탄했고, ‘응원하겠습니다’라는 말로 합격을 선언했다.

제작진이 직접 나서 프로그램의 취지를 재차 설명했지만, 프로그램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말끔하게 벗겨지긴 어려워 보인다. 가치관이 어느 정도 형성돼있고,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대가 아닌 참가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그 모습으로 대국민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레아 스튜디오 측은 법에서 15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정한 연습 및 녹화 시간(일주일에 35시간)을 준수했고, 참가자들의 학습권 역시 보장했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된 콘셉트에 대해서는 “참가자 보호자와 상호 적극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의상 및 스타일링을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상품화 의도가 없었다 해도, 재능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K팝 아이돌의 콘셉트를 재현할 수밖에 없을 거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주는 불편함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성장하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화면에서 그대로 전국민에게 보여주고 평가받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아이돌의 연령대를 계속 낮추는 걸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지, 과거와 달라진 대중의 감수성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