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오파고스’서 울려 퍼진 복음… 바울은 ‘겐그레아’서 어떤 서원을 했을까

입력 2025-03-23 15:27 수정 2025-03-23 20:30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신전들. 파르테논 신전, 엘렉테이온 신전, 니케 신전(위부터).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로 아테네를 상징하는 명소다. 지난 18일 그리스선교&성지연구소 주최로 열린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 성지순례에 참여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여수노회 여천북시찰회 소속 (15개 교회) 30명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해발 150m 높이의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아크로폴리스 입구는 이른 오전임에도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크론(가장 높은)과 폴리스(도시)의 합성어로 ‘가장 높은 도시’라는 뜻이다.

아티쿠스 음악당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기 전 5000명을 수용했던 아티쿠스 음악당이 웅장한 규모로 방문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현재도 각종 연극이나 콘서트 등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음악당에서 조금만 걸으면 승리의 여신 니케를 기린 ‘니케 신전’이 나온다.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정문 ‘프로필라이아’

이후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정문 ‘프로필라이아’를 통과한 뒤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자 순례객들은 탄호성을 질렀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여신을 위한 곳으로 모두 곡선으로 이뤄졌으며 완벽한 비율의 표본으로 꼽히는 명소다. 그리스의 황금기인 BC 477~432년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위해 새로운 신전을 지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맞은편에 있는 엘렉테이온 신전은 아테네 포세이돈 이렉테우스를 기리는 세 개의 성소가 붙어있는 특이한 구조로 지어졌다.

‘신들의 신전’서 당당히 복음 전파

사도 바울이 아테네 신전들을 바라보며 설교한 아레오파고스 전경.

아크로폴리스 내에 있는 신전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스인들에게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전쟁의 여신의 힘이 필요했고, 바다를 안전히 누비기 위해서는 포세이돈의 가호가 절실했을 것이다. 이곳을 바라본 사도 바울이 분통함을 여기며 설교한 ‘아레오파고스(아레오바고)’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있다. 바울이 아크로폴리스 신전을 향해 설교한 곳으로 사도행전 17장 16절의 배경 장소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행 17:16)

연구소 연구원 김태연 목사는 “바울이 자신의 학문을 총동원해 설교하지만(행 17:22~32) 그 설교는 결국 실패한다”며 “지식만으로 전도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바울은 결국 복음이 하나님의 영역임을 깨닫고 이후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린다는 고백을 한다”고 말했다. 순례객들은 바울처럼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하나님의 영역을 의지하며 그의 선하심을 기대하자고 기도했다.

바울의 행적 가장 길었던 고린도

고린도 박물관에 있는 유대인 회당을 암시하는 비석과 메노라(7개 촛대)의 모습(위부터).

이후 순례팀이 방문한 곳은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78km 떨어진 고린도 지역.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이라는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고린도 박물관에는 고대 고린도의 유적뿐 아니라 유대인 회당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비석과 메노라(7개 촛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울이 방문할 당시 풍요로웠던 고린도는 음란함이 성행한 도시였다(고전 6~7장). 이 말씀을 뒷받침하는 듯 박물관에는 성기 모양의 물컵 등 당시 고린도 문화를 암시하는 다양한 유적이 전시됐다.

고린도 유적지와 사도 바울이 재판받았던 비마 전경(위부터).

순례팀은 고린도박물관에서 50m 떨어진 ‘비마’에 잠시 머물렀다. 바울이 집권자들로부터 재판받은 장소다. 복음 전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재판받은 바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순례팀은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처럼 복음 때문에 핍박받을 각오가 돼 있을까 돌아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미지의 땅 나서기 전 머리 깎으며 서원

예장통합 여수노회 여천북시찰 회원들이 겐그레아에서 사도 바울을 떠올리며 찬양하고 있다. 그리스선교&성지연구소 김태연 목사가 겐그레아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과 겐그레아 바닷가 모습(위부터).

이날 순례 여정의 화룡점정은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샤론 만에 있는 겐그레아였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와 아시아 지역을 연결하는 항로가 있어 이곳에서 아테네나 에베소로 가는 배를 이용할 수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을 마친 뒤 겐그레아에서 나실인의 서원을 이루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행 18:18)

김 목사는 “겐그레아는 바울이 서원한 장소인 만큼 그에게 의미 있는 장소였을 것”이라며 “어쩌면 죽음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기 전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그럼에도 걷겠다’는 심정으로 머리를 깎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보다 신실하게 주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로 결단해보자”고 권면했다.

순례객들은 바울의 서신서가 나온 현장을 볼 수 있음에 감격스러워하면서 당시 바울의 신앙을 되새길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여천북시찰 회장 라양오 주향교회 목사는 “생명에 위협받는 순간이 도래할 것을 짐작했음에도 겐그레아에서 결연하게 서원한 바울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라며 “복음 전파자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다시금 배우게 된다”고 밝혔다.

이금 세포교회 사모는 “교통 등이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바울이 어떻게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성경을 다시 읽는다면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시각에서 볼 것 같다”고 전했다.

초대교회 신앙과 선교 열정 불붙도록

그리스에는 튀르키예보다 5배 많은 기독교 성지가 있으며 초대교회 이후의 기독교 유적이 대부분 잘 보존돼 있다. 2020년 본격적으로 사역을 재개한 그리스선교&성지연구소(이사장 송병학 목사)는 초대교회 사도들을 비롯해 초대교회 중심인물들의 삶과 믿음, 사역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성지순례를 하는 목회자들의 목회를 돕고 있다.

연구소 연구원 김태연(사진) 목사는 “연구소는 일반 여행사처럼 수익 사업을 내는 것보다 전문적인 성지 탐사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며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아테네에서 한글어학원과 한국문화 동아리를 운영하며 그리스 청년 세대에게 한국을 전하는 한편 한국어로 복음을 접하게 하는 사역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소는 그리스 성지를 찾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초대교회의 신앙과 선교의 열정을 다시금 불붙게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아테네·고린도(그리스)=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