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외국인 여행객 체포·구금·입국 거부 속출

입력 2025-03-21 16:35
미국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20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컬럼비아대 졸업생 마무드 칼리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유학생인 칼리는 지난해 컬럼비아대에서 반이스라엘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난 8일 체포돼 구금됐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전 세계에서 온 미국 관광객과 영주권자들에 대한 입국 거부와 체포, 구금, 추방이 속출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매체 악스오스에 따르면, 한 프랑스 과학자는 휴대전화에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영국 BBC는 웨일즈 출신의 28세 영국 예술가 레베카 버크는 지난 2월 26일 북미 횡단 여행 중 구금됐다가 이번 달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버크가 미국에서 캐나다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에서 심사를 받았을 때 취업 비자가 없다며 불법 이민자로 체포됐다. 그는 관광 비자로 미국에 입국했지만 숙소에서 호스트의 집안일을 도왔다. 체포된 버크는 수갑에 채워진 채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구금 시설로 이송됐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인 루카스 실라프(25)는 미국 시민권자인 약혼녀와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려던 중 국경 검문서에서 체포됐다. 2주간 구금된 후 이번 달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재입국할 때 언어 장벽으로 인해 거주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을 잘못했고, 이민국 직원들은 그가 관광이 아니라 거주 목적으로 미국에 가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라프는 샌디에이고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16일간 구금된 끝에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또 다른 독일인인 제시카 브뢰쉬(29)는 미국에서 8일간의 독방 감금을 포함해 6주 이상 구금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브뢰쉬는 문신 장비를 가지고 여행 중이었으며, 국경 경찰관들은 그가 미국에서 불법적으로 일할 의도가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 NBC는 독일 출신의 미국 영주권자인 파비안 슈미트(34)도 지난 7일 룩셈부르크 여행에서 돌아온 후 구금됐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3일에는 미국 취업 비자가 있는 캐나다 배우 재스민 무니가 미국에 입국하려다 구금돼 열흘 넘게 이민자 수용소에 머물러야 했다는 뉴스가 일제히 보도됐다. 무니는 입국장에서 새로운 취업 비자를 신청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입국이 거부됐다. 그는 두 곳의 수용소로 옮겨지면서도 구금 이유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 그의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고 변호사 선임이 허용된 끝에 12일 만에 풀려났다.

무니는 “나는 캐나다 여권에 변호사, 언론의 관심, 친구, 가족, 심지어 나를 옹호하는 정치인까지 있었다”며 “나보다 불리한 여건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미국 입국) 제도가 어떻게 작용할지 상상해보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해외 각국 정부들은 미국 여행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영국 외무부는 홈페이지에 “미국 당국은 입국에 관한 규칙을 엄격하게 정하고 시행한다. 당신이 규칙을 어길시 체포되거나 구금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게시했다.

독일도 비자나 입국 면제를 받았다고 해서 미국 입국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미국 여행에 관한 권고 메시지를 보완했다.

대학들도 유학생들에게 재입국이 어려울 수 있으니 비필수적인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는 이번 주 외국인 학생과 직원들에게 “재입국 요건이 변경돼 학교 복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봄 방학에 여행 자제를 권고하는 공지문을 보냈다.

브라운대는 취업 비자를 소지한 레바논인 교수가 레바논 여행 후 추방되자 유학생과 교직원들에게 해외 여행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이민 당국이 심사 과정에서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개인 전자기기를 열어보는 일도 빈번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에서 이민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댄 버거는 “누군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에게 소셜미디어와 전자기기에 있는 내용을 매우 조심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