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르네 야콥스는 클래식계에서 손꼽히는 고음악의 거장이다. 독일에서 소년성가대원을 거쳐 카운터테너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야콥스는 바로크 음악 연구와 연주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1977년부터 지휘자로서 잊혀진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야콥스가 오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시대악기 전문 단체인 비록(B’Rock) 오케스트라와 함께 헨델(1685~1759)의 첫 번째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헨델이 21살이던 1707년 이탈리아에서 베네데토 팜필리 추기경의 대본을 토대로 만들었다.
일종의 종교적 극음악인 오라토리오는 무대장치 없이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독창과 중창, 합창이 등장한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는 아름다움·즐거움·깨달음·시간이라는 의인화된 존재들이 삶과 죽음·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인 담론이 담긴 작품이다. 독일 출신의 젊은 헨델이 당시 음악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에서 대가들과 교류하며 처음 만든 오라토리오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아리아와 콜로라투라(기교적이고 화려한 꾸밈음) 기법이 일품이다. 이 오라토리오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가시는 내버려 두오’ (Lascia la spina)인데, 헨델이 1711년 오페라 ‘리날도’에서 이것을 가져다 ‘울게 내버려 두오’ (Lascia ch'io pianga)로 개사해 다시 사용했다.
1700년대로의 음악적 귀환을 보여줄 이번 무대에는 매력적인 성악진도 기대를 모은다. 폭넓은 음역과 섬세한 표현력의 소프라노 임선혜가 주인공 ‘아름다움’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또한, 소프라노 카테리나 카스페르, 카운터테너 폴 피기에, 테너 토머스 워커가 합류해 음악적 조화를 보여준다. 이번 공연은 4월 2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