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조선·방산 등 상대적 호황을 누리고 있는 기업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높이는 안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이사회에 합류한 기업 오너들의 연봉도 덩달아 뛸 전망이다. 반면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 확대 속에 반도체, 배터리 업계 등은 보수 총액 한도를 축소하기로 했다.
이사 보수는 회사가 사내·외이사에게 지급하는 월급·상여급·퇴직금 등을 의미한다. 회사가 이사들에게 지급 가능한 보수 총액의 상한선인 ‘보수 총액 한도’는 상법에 따라 주주총회를 거쳐 승인받아야 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20일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218억원에서 237억원으로 19억원 올린다. 지난 14일 주총을 연 기아는 보수 한도를 기존 대비 배 이상 늘렸다. 기아의 올해 이사 보수 총액은 전년 대비 95억원 오른 175억원으로 결정됐다.
HD현대는 오는 27일 이사 보수 한도를 지난해 27억원에서 40억원으로 약 1.5배 늘리는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이사진 수는 지난해와 같은 5명이다. LIG넥스원도 이사 수 상한을 7명으로 유지하지만 보수 한도액을 기존 35억원에서 40억원으로 상향한다.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보수 한도액을 기존 9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각각 30억원 확대하는 안건을 올렸다.
통상 이사 보수 한도 증액은 기업 총수의 사내이사 겸직 및 연임과 맞물려 ‘오너의 셀프 연봉 인상’이라는 인식이 많다. 한도가 늘면 자연스럽게 지배주주인 임원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아의 이사 보수 한도액이 95억원이나 증가한 것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보수를 지급하기 위한 포석이다. 올해부터 정 회장이 기아의 보수를 받게 되면 총 연봉 수령액은 2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HD현대에서도 권오갑 회장, 정기선 수석부회장의 보수가 오를 공산이 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연봉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은 보수 한도를 삭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정기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36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3% 감액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사 수도 지난해 11명에서 올해 10명으로 줄였다. 이에 1인 이사 보수 한도는 39억원에서 36억원으로 3억원 축소됐다. 경영진의 고통 분담 차원의 결정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쓴 SK하이닉스도 이사 보수 한도 총액을 150억원으로 감액했다. 전년 대비 25% 줄어든 수준이다. SK하이닉스가 이사 보수 한도를 축소한 것은 2009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직격탄을 맞은 배터리 기업들도 보수 한도를 낮췄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2월 LG화학에서 물적분할된 이후 처음으로 보수 한도를 줄였다. 그간 80억원을 유지해왔지만 올해 60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줄었다. 삼성SDI도 12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20억원 내리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SK온 모회사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로 보수 한도를 12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내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