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A는 학년마다 초반엔 친구들이 다가오고 친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더 가까워지지 않는다. 결국, 단짝이 생기질 않아 혼자가 된다.
‘친구들이 날 배신했어’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다. 따라서 위축되어 사람에 다가가질 못한다. 학교도 자주 결석했다. 특히 교실을 비롯한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하며 어지럽다고 말한다. “저는 공황 장애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학교에 가는 것도 힘들고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이 힘들어요” 공황장애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걸 용인해 달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A는 공황장애가 아니다.
사실 공황장애라는 질병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쉽게 치료가 되는 질병이다. A의 증상은 공황장애라기보다는 극심한 불안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임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극심한 불안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적으로 습득된 자연스러운 신체적 반응인 거다.
그렇다면 A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극심한 불안 반응을 보이게 되었을까? 사람은 부모, 또는 양육자와의 첫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애착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A의 주 양육자는 엄마였다. 엄마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자수성가한 독립적인 여인이었다. 자신도 그랬듯이 A도 스스로 자립적인 사람이 되길 바랬다.
영유아기엔 엄마가 너무 바쁘기도 해서 거의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엔 투정을 너무 받아주면 나약해질 거 같아 A가 힘들어할 때마다 감정에 빠져들지 말고 기분이 전환되도록 무엇인가를 해보라고 권유하였다. 엄마를 통해 A는 암묵적으로 ‘감정이 깊어지는 것은 위험해!’ 라는 것을 학습하게 된 듯했다. 친구들과도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두려움을 느끼고 회피하는 행동(연락을 안 받거나 답장을 안 하는 식)을 무의식중에 보였다. 친구들은 당연히 멀어져갔다.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의 배신’이라고 단정 지었다. 배신과 거절이 두려워 철수하는 행동 패턴을 더욱 반복하며, 강화하게 된다.
그런데 애착의 유형이 정해지면 고칠 수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물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반복해야 하고, 많이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의 애착 패턴을 알아야 한다. ‘타인을 대할 때 오래되고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 시작된 사건’을 떠올려 보자. 하지만 이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단지 확인하는 것일 뿐.
다음은 사람들을 대할 때 반복되는 행동을 촉발되게 하는 반복되는 감정(예컨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무시당하는 느낌, 공격받는 느낌 등등)을 알아차려 보자. 이런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고 싶은 욕구, 도망가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 것을 느껴보자. 그 감정을 끌어안고, 잠시 머무르며,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를 위해 도움이 될지를 선택해 보자. 이런 식의 연습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도 여러 번 해본 후 실제 사람을 만났을 때도 반복해 보자. 이런 식으로 달리 행동을 하다 보면 어려서 형성된 애착의 양식에 따르는 행동의 패턴이 달라진다. 애착유형도 바뀌어 간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