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군데 찌르고 1시간 지켜봐”…‘묻지마 살인’ 유족 울분

입력 2025-03-19 10:50 수정 2025-03-19 13:14
충남 서천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이지현(34). 충남경찰청 제공

충남 서천에서 산책을 하다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피해자의 유족이 피의자 이지현(34)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지난 16일 대전지검에 피의자 이지현을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천 묻지마 살인사건 가해자 엄벌 탄원서’를 제출하고, 이를 네이버 폼 형식으로 온라인에 공유해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해당 탄원서 링크는 19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돼 참여 인원을 모으고 있다.

피해자 아버지는 탄원서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고 열심히 살아온 제 자녀는 일면식도 없는 피의자에 의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며 “그로 인해 남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큰아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떠나갔을 생각에 저희 가족은 이미 파괴되고 피폐해져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다시 큰애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하루하루가 죽음과 고통의 나날들”이라고 토로했다.

피해자 아버지는 “피의자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커녕 오히려 경찰에 검거된 직후 즉시 변호인까지 선임해 본인의 지적장애와 우발 범행을 주장하고 불리한 진술은 거부하는 등 자기방어와 처벌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천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의 탄원서(https://form.naver.com/response/tAkrzjtCHROm6ozkJrSi4A) 일부. 온라인 캡처

그는 “피의자의 사건 당일 행적은 매우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했다”면서 “피의자는 며칠간 매일 1시간 이상 현장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고 저의 자녀가 나타나자 미리 준비한 흉기로 얼굴과 목, 복부 등 수십 군데를 찔러 무참히 범행했다. 이후 시신이 발견되지 않도록 산책로 밖에 유기하고 길가에 있던 헌 이불로 덮어놓았다. 휴대전화는 건너편 도로 하수구에 버려 행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더해 (피의자는) 사건 현장에 1시간가량 머물면서 마치 제 아이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행동과 지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발견 여부를 확인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며 “사건 현장은 방범용 CCTV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피의자의 계획적인 범죄를 반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의자는 범행 전까지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했고, 그 이전에는 서천읍사무소에서 행정도우미로 10년 이상 근무했다”며 “자기 행동이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상태였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아버지는 “가해자가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처벌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면서 “우리 가족의 시간은 사건이 발생한 그 시간에 멈춰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희망이 없다.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저 잔인한 가해자에게 무기징역 이상의 강력한 처벌만이 우리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것 같다”고 호소했다.

지난 2일 밤 충남 서천군 사곡리의 한 인도에서 살인 피의자 이지현(오른쪽)이 우산을 쓴 채 걸어가는 피해자를 발견하고 뒤쫓는 모습. KBS 보도화면 캡처

경찰은 지난 11일 피의자 이지현을 살인 혐의로 구속 송치하고 13일 그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이지현은 지난 2일 오후 9시45분쯤 서천군 사곡리의 한 인도에서 마주친 4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이지현은 초기 경찰 조사에서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그가 사전에 흉기를 소지하고 특정 대상을 물색한 점과 살해 계획이 드러난 메모장 등을 바탕으로 계획 범죄로 결론내렸다.

경찰은 CCTV를 통해 이지현이 범행 직전 남성으로 추정되는 행인의 뒤를 밟다 미수에 그치고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신변을 비관하는 글과 사람들을 살해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긴 메모가 발견됐다.

가상화폐(비트코인) 투자 사기로 수천만원의 금전 피해를 본 것이 직접적 범행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지현은 경찰에 체포된 뒤 “최근 사기를 당해 돈을 잃었다. 너무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세상이 나를 돕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은 이지현에 대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 검사를 진행했으나 그가 일부 진술을 거부하는 등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 ‘진단 불가능’ 판정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