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기 혹시 목이버섯 있습니까?”
“없는데요.”
그녀는 기가 막혔다. 이민 와서 5년 동안 슈퍼마켓을 하고 있지만 그런 버섯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서양 남자가 그걸 찾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장사를 엉터리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져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인 고객 제임스 빌은 한국에 파병 근무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우리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건장한 체격에 유머가 풍부하고 따뜻한 남성인 그는 가게에 들를 때마다 ‘장사는 잘되느냐, 왜 이민을 오게 됐느냐’고 물었다. 관심을 두고 있는 그는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었다.
제임스 빌은 자녀들의 학업에 관해서도 관심을 보여 주면서 캐나다의 교육과정에 문외한인 그녀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그가 가끔 슈퍼에 들르면 커피 한 잔씩 나누기도 하고 그의 친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었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그즈음이었다.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녀 부부도 아들딸과 함께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하여 결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 발을 딛는 그날부터 바늘 판을 걷는 아픔이 있다. 때로는 익모초를 삼켜야 하는 인생의 쓴맛도 보게 된다. 자연히 부부 사이도 예전 같지 않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누가 이민 오자고 했냐. 네년이 외국에 환장해서 내 신세를 망쳤다.”
“아니, 네놈이 사인해서 우리가 온 거지, 누구 탓이야.”
이렇게 육박전을 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자식들의 눈물 때문에 겨우 평정을 찾곤 하였다.
사연을 듣던 나는 어디서부터 그 가정의 어려움을 위로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한국에서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가 없고, 또 일류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먼 나라로 이주를 한 그들이었다. 그녀의 사연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가슴을 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사태는 터지고야 말았다. 남편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남편은 가게 이쪽에서 아내는 저쪽에서 서로를 무시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때 제임스가 웬 서양 친구와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은 표정으로 가게에 들어와 침울한 그녀를 바라보던 제임스는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겼느냐,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위로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걱정하였다.
그녀가 야채 박스를 내리려고 의자를 딛고 올라서려니 제임스는 도와주겠다며 짐들을 모두 내려 주고 더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녀는 제임스에게 억지로 웃어 보이면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그 남자는 전화번호까지 남기며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이런 모습을 한쪽에서 흘겨보고 있던 남편이 드디어 폭발했다.
“미친년! 그놈만 나타났다 하면 금방 여우처럼 변해서 시시덕거리고 사족을 못 쓰는데 너 그놈하고 무슨 일 없었어? 그 코쟁이하고 살면 잘 맞겠더라.”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말은 씨가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를 하게 됐고 제임스는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가까워져서 너무 쉽게 사랑하는 사이가 돼 버렸다.
생각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서로 흥분해서 내뱉은 무책임한 말들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돼 버린 것이다.
서양 사람들의 사랑한다는 말에는 무거운 책임이나 부담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들이 뱉어내는 사랑한다는 말은 내일까지도 시효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들은 단 5분 동안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수십 번 할 수 있고 그 수십 번의 사랑의 노래는 단 한 번의 ‘노’로 끝날 수가 있다. 이것이 곧 그들의 감정이며 표현 방식이며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다.
그러나 평생 아들딸 낳고 살면서도 ‘사랑한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그들과 다르다. 일생에 오직 한순간의 사랑의 행위도 그것이 곧 ‘당신의 전 인생을 책임지겠다’라는 믿음을 동반하고 있다.
이런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캐나다에 정착한 이 가족은 서로의 상처를 매만져 줄 수많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참새의 둥지도 함부로 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의 가정이 탄생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정의 무너짐은 너무도 짧은 순간에 끝이 났다. 서로 조금씩 다가서야 할 시간에 틈만 나면 오히려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때로는 언어폭력으로 또는 무관심과 증오로 걸핏하면 상대방의 허점만을 찾아내려고 했다. 원망과 미움은 더 큰 증오를 만들었고 결국 가정은 파탄을 맞게 되었다.
우리의 보금자리인 가정을 아름다운 정원에 비유한다. 정원의 다양한 꽃들은 색깔과 향기가 모두 다르다.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향기를 내는 장미에는 가시가 있고, 늦가을까지 피는 국화는 추위에도 홀로 청청하다. 한 달 내내 물이 필요 없는 정원수가 있는가 하면 단 하루라도 물기가 없으면 죽어 버리는 화초가 있다.
쉴 새 없이 관찰하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수고가 없이는 결코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다. 나무를 보며 정원사의 수고를 알게 되고, 열매를 보고 농부의 수고를 알게 된다. 사랑이 없는 가정은 죽어 버린 나무와 같다. 부둥켜안고 뒹굴고 깔깔거리는 소리가 담을 넘어가야 살아 있는 가정이다.
<센트럴 파크>
-김국애
밴쿠버 센트럴 파크의 아침 호숫가 벤치에 기댄
그녀의 뒷모습은
봄동 배춧속같이,
납작하게 패인 가르마
사색에 잠긴 그 사람
오리 한 쌍의 물갈퀴 소리
풀벌레들 화답하는 아침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
그림엽서와 해묵은 편지들이
호수 위에 낙엽처럼 떠 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
물살에 밀리고 흩어지며
동심의 한때를 호흡하는가 보다
공원 한 바퀴를 돌아드니
여전히 미동도 없이
한나절을 넋 놓고 앉아 있다
호수 속에 잠긴 둥근 하늘
거기 한 쌍 사랑의 몸짓은
침몰당한 사랑을 일깨우고
휘청이는 무릎을 세워
내일의 안녕을 염원하는
센트럴 파크의 아침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