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1만4000㎞부터 최대 2만㎞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 여행은 신약성서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신약성서 27개 문서 중 13편에 달하는 그의 서신서들은 초대교회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15일부터 그리스를 방문해 그의 선교 여정을 따라갔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공항에서 서쪽으로 차로 20분 정도 이동하자 에개해 쎄르마이코 만을 마주한 테살로니키 구시가지가 나왔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성벽은 군데군데 무너진 곳도 있지만 대체로 많이 남아있었다. 돌과 벽돌로 튼튼하게 높이 쌓은 성벽 바깥으로는 멀리 테살로니키 시내와 테살로니키항구와 바다가 보인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북쪽 513㎞에 있는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제2의 도시이자 발칸 반도의 여러 동유럽 국가들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상공업과 교육이 발달한 항구도시다. 현재 모습은 1917년 대화재로 도시가 파괴된 뒤 새롭게 재건한 모습이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층 건물 가운데 주황색 지붕이 있는 집들이 눈에 띄었다.
데살로니가 묵상하며 바울 선교 되새겨
구시가지를 둘러싼 ‘테오도시우스 성벽’(쎄오도시우스 틱꼬스) 앞에서 진귀한 풍경을 펼쳐졌다. 22명의 미국 순례팀들이 흩어져 신약 성경 데살로니가를 진지하게 묵상하고 있었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김수길 그리스 선교사는 “데살로니가에서 30년 가까이 사역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며 반색했다.
이들은 서서 묵상하거나 먼 해변을 바라보며 말씀을 곱씹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국 보스턴에서 온 교사인 켈리 다이글씨는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읽고 있는데 바울이 어떤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을까 상상하며 묵상했다”며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성경의 배경 장소라 그런지 더 새롭게 와닿는다”고 말했다.
AD 382년 외세의 침입 방어를 위해 이 성벽을 만든 이는 테오도시우스 1세로 데살로니가 칙령을 선포해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으며 기독교를 부흥시킨 인물이다. 바울이 선교 여정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데살로니가는 5만여명이 거주한 자유도시였다. 바울은 습관에 따라 유대교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행 17:2).
김 선교사는 “테오도시우스의 기독교 칙령은 이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뿌린지 약 320년 뒤 복음의 씨앗이 맺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허다한 무리가 복음 받아들인 ‘아고라’
이곳에서 차량으로 5분가량 바닷가로 내려오면 ‘로만 아고라 저잣거리’를 볼 수 있다. 아고라(agora)는 헬라어로 ‘시장’을 뜻한다. 축구장 크기의 이곳은 로마 시대 시장터로 알려지는데 오늘날로 보면 대형 쇼핑몰이라 할 수 있다. 김 선교사는 “지금은 지하처럼 보이지면 2000여년 세월에 토사가 쌓인 것으로 보인다”며 “이곳에 여러 물건을 파는 상가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쪽에는 동전 주조 공장이 있었고 여행객을 위한 족욕장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이 바울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사도행전 17장에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 고난받는 장면이 나온다.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행 17:4~5)
김 선교사는 “이곳이 지역 일대에서 가장 큰 시장터였던 만큼 각종 토론의 장이었던 1층 탁 트인 공간에서 바울이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이들로 인해 베뢰아로 피신해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로만 아고라 저잣거리 옆에는 ‘아기오스 디미띠리오 교회’가 있다. 5세기에 건축된 교회로 1917년 대화재 때 소실된 것을 1926~48년 남은 자재를 이용해 복원했다. 기독교 공인 후 가장 먼저 탄생한 교회 건축 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이 담긴 명소다. 이곳 지하로 내려가면 초대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울의 설교 장소 ‘비마’ 핫한 기독 관광지
데살로니가에서 남쪽으로 65㎞ 떨어진 베뢰아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을 피해 말씀을 전한 곳이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인들보다 너그러웠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한 곳이었다(행 17:10~13).
베뢰아에는 바울이 베뢰아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다는 강단인 ‘비마’가 있으며 최근에는 바울의 동상 등이 세워졌다. ‘사도 바울의 강단’은 베뢰아를 방문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종교 관광지다. 순례객들은 바울의 전신 동상뿐 아니라 화려한 모자이크 그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자이크 벽 가운데는 바울이 말씀 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오른쪽은 바울과 베뢰아인들의 모습, 왼쪽은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 속에서 마케도니아 선교를 촉구한 천사와 바울의 모습을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민족의 고난 역사 기억하는 유대인
바울이 이곳을 방문할 때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현재 유대교 회당과 유대교 마을이 보존돼 있다. 바울이 이곳을 오가며 설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인 거주 지역(게토)인 회당 안과 집 외곽에는 시편 137편 5절 등 성경 구절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유대인 등이 단기로 머무를 숙소들이 줄지어 있다.
김 선교사에 따르면 바울 시대에도 많은 유대인이 있었지만, 이베리아반도에서 1492년 나스르 왕조를 멸망시키며 영토 회복을 이룬 이사벨 여왕은 회교도뿐 아니라 많은 유대인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추방한다. 이때 추방된 많은 유대인이 테살로니키와 이곳 유대인 거주 지역에 몰려왔다. 세계 2차대전 시 히틀러와 나치는 이곳의 대부분 유대인을 폴란드의 수용소로 보내 살해한다.
김 선교사는 “이곳의 애잔한 역사를 이해하면 가슴 한쪽에서 잔인한 인간의 심성이 생각나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며 “과거 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의식이 살아있는 동안 베뢰아는 영원히 신사적인 사람들의 도시인 것”이라고 전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사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테살로니키·베뢰아(그리스)=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