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톡] 입시공화국 속 ‘배워서 남 주자’를 외치는 기독사학

입력 2025-03-18 15:43 수정 2025-03-21 18:24
숭실대 한동대 경신고 배재고 전경(왼쪽부터). 각 학교 제공

서울 숭실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와 길 따라 걷다보면 낮은 언덕 위에 한경직기념관을 마주합니다. 지난 17일 이윤재 총장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숭실대 한경직기념관 앞 공터에는 ‘진리와 봉사’라고 적힌 교육이념석이 있었습니다.

숭실대의 교육철학은 1897년 윌리엄 M 베어드 선교사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진리와 봉사. 이날 이 총장은 “진리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닮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며, 봉사는 예수의 정신을 따라 이웃을 섬기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부와 명예를 가진 입신양명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진리를 추구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배워서 남 주자”라는 기독사학들의 철학은 140년 전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받은 사랑과 배움을 주변에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심은 교육 철학의 씨앗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외침은 고(故) 김영길 한동대 초대총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지난 12일 30돌을 맞은 한동대의 개교기념식에서는 이 울림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날 최도성 총장은 “졸업생 100명 중 4명(3.7%)이 비영리단체에서 직접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배워서 남 주자’의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섬김에 대한 가르침은 중등교육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경신고 1층 계단 앞에는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 때부터 지켜온, ‘기독적 인격’이라는 교훈이 커다란 액자에 적혀 있습니다. 한지민 경신고 교장은 “예수님 닮은 인격이며 이 땅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격”이라고 기독적 인격의 의미를 정의했습니다.

한 교장은 “아이들이 줄고 기독사학이 어려움을 마주했어도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기독적 인격을 가진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함”이라며 “민족을 사랑하고 시대를 아끼는 이념을 가르쳤기에 김규식 안창호 등 여러 독립운동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배재고 교육철학 역시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마 20:26~28)입니다. 타인을 섬기는 자세가 진정한 지도력과 인격적 성장을 위한 발판임을 교육하고 있는 겁니다. 배재고가 ‘지구촌 친구 맺기’나 ‘농촌 선교 봉사 활동’ 등 여러 구체적인 섬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여러 기독사학의 건학이념을 보며 제물포항을 통해 들어온 선교사들의 비전은 ‘섬김’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혼자, 높이 올라가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입시공화국에서, 아이들에게 “배워서 남주냐”라고 묻기보단 “배워서 남 주자”라고 가르칠 수 있길 바라 봅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