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진실 알린 故김영수 목사 41년 만에 민주묘지 안장

입력 2025-03-18 07:37


전두환 신군부의 불법 비상계엄과 광주 학살에 맞서다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故김영수 목사가 41년 만에 국립5·18민주묘지에 17일 안장됐다. 그는 ‘목사는 고난의 현장에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생전에 학생운동, 야학, 민주화운동 등에 헌신한 인물이다.

김 목사는 5·18 민주유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41년간 파주 금촌에 안장됐다. 2007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지만 묘지 안장 대상은 아니었다. 이후 2023년 유가족들이 ‘5·18 8차 피해보상’을 신청하면서 2023년 11월에야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 목사의 아내 남영숙 목사는 “남편이라면 보상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보상을 받으면 남편의 죽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러다 2021년 남편이 광주의 민주화운동 동지들 곁에 안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를 위해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아야 했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2023년 11월에 마침내 인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감격적인 안장식을 거행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 남편은 이곳에서 김의기 열사와 만나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한국기독학생총연맹 등이 주관하는 ‘김영수 목사 41주기 국립5·18민주묘지 안장 예식’은 이날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됐다.


김 목사는 1946년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1973년 장로교신학대에 편입해 기독학생회 회장을 지냈다. 1978년 감리교신학대로 옮겨 산업선교회를 조직하고 동대문 피복노조와 미성년자 노동자들의 교육활동과 권리를 증진하는 활동을 하기도했다.

광주 5·18 이후인 1980년 6월에는 강화도의 개척교회에서 사역하던 중 김의기 열사의 유인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등사해 기독교대한감리회 강화서지방 청년연합회 참석자들에게 배포하고 낭독했다.

김 목사는 같은해 감신대를 졸업한 뒤 파푸아 뉴기니 선교사로 파송예정이었지만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계엄법 위반, 불온 유인물 배포죄, 국가원수를 모독 및 비방죄로 구속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같은해 8월 수도군단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 목사는 창후교회를 개척했으나 수감생활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급성백혈병을 얻어 1984년 3월 17일 명동성모병원에서 소천했다.

이날 안장예식을 진행한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사무총장 전남병 목사는 “오늘 고 김영수 목사의 국립 5·18 민주묘지 안장은 오늘날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현실과 맞물리며 깊은 울림을 준다”고 전했다.

이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군사정권에 맞서 싸운 한 시골 목회자의 삶과 평생 가난한 신앙을 강조했던 그의 짧은 생애는 우리 시대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어떤 신앙적 실천을 해야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