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DOE)가 산하 연구소의 한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유출하려고 한 시도를 적발하고 이를 의회에 보고한 것으로 17일(현지시간) 파악됐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가 보안 문제 때문이라고 외교부가 밝힌 가운데, 에너지부 자체 보고서에도 유사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민감국가 지정 사태의 주원인이 보안 문제로 좁혀지고 있지만, 의문점도 남는다.
에너지부 감사관실(OIG)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지난해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의 도급업체 직원은 수출통제 대상에 해당하는 정보를 소지한 채 한국행 항공기에 탑승하려고 했다가 적발돼 해고됐다.
보고서는 “감사관실은 해당 정보가 수출 통제 대상임을 확인하고, 직원의 정부 이메일과 채팅을 조사해 직원이 수출통제 규정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외국 정부와의 소통이 있었음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2023년 10월 1일부터 지난해 3월 31일 사이에 발생한 사례로 소개됐으며, 감사보고서 제출 당시 연방수사국과 국토안보국이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해당 직원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알려졌다.
다만 외교 당국은 이 사건이 민감국가 지정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사례는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공개 보고서에 실릴 정도의 경미한 사안으로, 이보다 심각한 한국 연구원들의 보안 규정 위반 사례들이 더 있었다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런 사례들이 누적되면서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는 설명이다.
민감국가 지정 원인이 국내 핵 무장 여론이나 정치적 혼란이 아닌 ‘정보 유출’로 좁혀진 만큼, 외교 당국은 지정 철회를 위해 미국 정부와 소통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현안 논의를 위해 이번 주 워싱턴을 찾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과 민감국가 지정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린 조치를 트럼프 행정부가 계속 유지할지도 관심사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국민일보에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감국가 지정)를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된 조치로 묘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도 트럼프 팀이 유연성과 의사 결정 여지를 유지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해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된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아 한국 외교부가 미국 에너지부의 카운터파트를 찾아 소통에 나서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가 이번 사태의 원인을 보안 문제로 지목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미국의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설명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 14일 한국의 민감국가 지정 사실을 언론에 확인하면서도 지정 이유는 함구했다. 민감국가 지정 시점이 한국의 비상계엄 등 정치적 혼란과 핵 무장 여론 고조 시점이라는 점도 여전히 여러 억측을 낳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동맹인 한국을 북한 중국 러시아 등과 같은 적대국들이 대거 포함된 명단에 넣었음에도 사전 예고하거나 통보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가 두달 내내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