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다운 저력 잃어…사즉생 각오로 위기 대처해야”

입력 2025-03-17 10:05 수정 2025-03-17 13:00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 임원들을 향해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2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랬던 이 회장이 이번엔 ‘사즉생’까지 거론하며 절박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 회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실기, 대만 TSMC와의 격차 등 삼성이 처한 복합 위기 상황이 기업의 생존이 달릴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고 신발끈을 고쳐 매고 다시 뛰자고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회장 메시지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에서는 고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경영철학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고 한다. 이에 더해 이재용 회장의 기존 발언들과 함께 올해 초 신년 메시지로 내놓으려고 준비했던 내용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영상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영상 속 메시지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술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상징하는 ‘기술적 초격차’를 되찾자고 주문한 것이다. 그동안 이 회장은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경쟁력을 강조해 왔다.

세미나에선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삼성 위기 등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자리에서는 “실력을 키우기보다 ‘남들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안이함에 빠진 게 아니냐” “상대적인 등수에 집착하다 보니 질적 향상을 못 이루고 있는 것 아니냐” 같은 지적들이 나왔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내부 리더십 교육 등에 이어 세부 주제를 두고 토론을 하며 위기 대처와 리더십 강화 방안 등을 모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는 각자의 이름과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크리스털 패도 수여됐다.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임원의 역할과 책임 인식 및 조직 관리 역할 강화를 목표로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인력개발원 호암관에서 다음 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열린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