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석유화학단지 노후 지하 배관을 지상에 재설치하는 ‘통합파이프랙 구축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16일 울산시에 따르면 올해 통합 파이프랙 사업 착공을 위해 지난 2023년 12월부터 시작한 ‘울산 석유화학공단 통합파이프랙 구축사업’의 실시설계용역은 지난해 7월 중단된 후 올해 들어서도 재개되지 못하며 일시정지 상태다.
지난 1968년 국내 최초로 국가산단으로 조성된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지하 배관의 전체 길이는 577㎞에 달하고 이 중 30년 이상 된 배관이 27%에 이른다. 추가 증설이 어려운 포화상태일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누출사고가 발생하는 등 사고위험도 크다.
이에 따라 시는 총사업비 709억원(국비 168억원, 민간 541억원)을 투입해 울산석유화학단지 내 지상에 파이프랙 구조물 3.55㎞를 내년까지 구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실시설계 용역 과정에서 사업 부지가 너무 협소하고, 보호시설(산단)과의 이격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등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및 위험물안전관리법 등 관련 법안들에 저촉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시행규칙에는 일반공업지역 내 사업소 밖 지상 배관 설치 때 도로와 배관의 수평 이격 거리가 25~40m가 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울산 국가산단에는 이러한 이격 거리를 확보할 공간이 거의 없다.
통합 파이프랙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한 민·관이 사업 추진 단계에서 사업 타당성 검토 전에,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합의를 먼저 도출하고 사업을 시작한 터라 관련 문제들을 미리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울산시는 관련 법 개정 등 규제 개선에 한목소리를 내며 해법을 모색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저촉되는 관련 법안들은 국내 전체 산업단지의 안전과 직결되다 보니 울산지역만을 위한 법 개정과 규제 개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실시설계를 담당한 울산도시공사와 울산시는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협의 끝에 실시설계 중단을 결정했다. 국비로 투입된 실시설계 비용도 현재 반납 절차를 밟고 있다.
시는 산업부와 협의한 뒤 이달 말쯤 ‘석유화학단지 안전성 제고를 위한 연구 용역’을 추진하기로 했다. 시비 5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용역의 결과는 연말에 나올 예정이다.
시는 용역을 통해 이격거리 확보 대신 보호시설을 보강하는 등 법에서 정한 기준을 준수하면서 파이프랙 구조물을 설치할 방안을 찾아 당초 계획대로 사업 목적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시는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협의를 거쳐 사업 속행과 중지를 판단할 예정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하나둘씩 나오게 됐다”며 “올해 안에 결론을 도출해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