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넘긴 이들이 법원 앞에 선 이유…“44년 전 국가폭력, 사과·회복 필요”

입력 2025-03-13 19:32 수정 2025-03-13 19:51
한국교회인권센터와 한울회사건피해자 재심촉구위원회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정문에서 한울회 사건 재심을 촉구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왜 사법부는 44년이 지나도 한울회 사건의 족쇄를 풀어주지 못하는가.”

한 손에는 마이크, 다른 한 손에는 탄원서를 쥔 박재순(75)목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법원의 재심을 촉구했다. 이날 한국교회인권센터와 한울회사건피해자 재심촉구위원회는 한울회 사건의 재심을 요청하는 1300여명의 서명과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한울회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1년 기독교 신앙 공동체였던 ‘한울모임’이 반국가단체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와 강압수사를 받은 일이다.이로 인해 당시 전도사 목사 학생 등 20여명이 체포됐으며 이 중 6명은 6개월에서 길게는 30개월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울모임은 매주 주일, 성경공부와 독서회를 진행했던 단체였다.

오는 15일은 이들이 체포돼 강제수사를 받은 지 44년이 되는 날이다.

박재순 목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 앞에서 한울회 사건 재심을 촉구하는 1300여명의 연대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들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박 목사는 “나는 한울회 사건으로 사법부에서 여덟 번의 판결을 받았다”며 “대법원이 첫 번째 판결에서 무죄 취지의 원심파기 환송 판결을 내린 것 이외에는 일곱 차례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 당시 한울회 사건과 관련해 민주화 운동 관련자라는 증서를 받았음에도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한울회를 반국가단체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한울모임을 향한 국가폭력은 미성년자를 가리지 않았다. 사건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임정묵(63)씨는 당시 대전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대전 오정동 모임을 참석했던 임씨는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경찰서로 강제 연행됐다. 임씨는 한 달여간 서대전 경찰서와 대전경찰서 대공분실에 감금돼 폭행과 진술 강요를 겪어야 했다. 임씨 이외에도 그와 함께 참여했던 고등학생 15명은 조사를 받았다.

시위 참석자가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한울회 사건에 대한 재심 촉구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그는 “경찰 조사 이후에도 오랜 시간 형사들의 감시대상이 됐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심각한 트라우마가 됐다”면서 “한울모임이 국가폭력의 희생자라는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국가는 제대로 된 사과와 재심이 없다”고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년 전 한울회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김종생 NCCK 총무는 한울회 사건으로 기소됐던 6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한울회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은 피해자들은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이 됐다”며 “여전히 국가폭력이 재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울회 사건에 대한 재심은 우리의 억울함뿐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 회복과 안전한 사회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