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인사와 극우 인사가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비판에서만큼은 합치를 이뤘다.
12일(현지시간) ABC뉴스 등에 따르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팟캐스트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설계자로 불리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출연했다.
배넌은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대규모 인력·예산 감축 작업을 이끌고 있는 머스크에 대해 “기생적인 불법 이민자”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뉴섬도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우려를 두고 우리 사이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고 호응했다. 또한 뉴섬은 “머스크는 당신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며 배넌을 띄워주기도 했다.
배넌은 최근 자신의 ‘워 룸’ 팟캐스트에서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평가하는 등 머스크에 대한 비난을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배넌에 대한 공개적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배넌과 머스크 사이 중재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뉴섬과 배넌은 이외에도 부자와 기업을 위한 세금 감면, 조 바이든 정부에서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소송을 이끌었던 리나 칸 전 연방거래위원장에 대한 호평 등 여러 주제에서 비슷한 시각을 공유했다. 배넌이 “상위 계층이 혜택을 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자 뉴섬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렇게 말해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배넌은 팟캐스트 출연 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뉴섬 지사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충격적이면서도 기뻤다”고 호평했다.
뉴섬 주지사는 이민자·환경 등 주요 이슈에서 트럼프의 대척점에 선 대표적인 ‘강경 진보’ 인사다.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임기 당시엔 캘리포니아 주지사로서 트럼프 정책을 거부하며 ‘반트럼프’ 선봉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반면 배넌은 트럼프의 복심으로 불리는 최측근 인사다.
이처럼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머스크를 필두로 여러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하자 미국 언론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뉴섬은 미국에서 가장 강경한 민주당원 중 한 명이지만 트럼프에 반발하지 않고 MAGA 설계자 배넌과 팟캐스트를 진행했다”며 “이들은 때때로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에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뉴먼은 최근 자신의 팟캐스트에 극우 인사를 부르며 ‘우클릭’하고 있다. 극우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팟캐스트’ 성공 전략을 벤치마킹한다는 분석이다. 앞서 보수 성향 청년 단체인 ‘터닝포인트 USA’의 창립자 찰리 커크를 초대해 트랜스젠더의 여성 스포츠 참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를 두고 민주당과 좌파 진영 내에선 변절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에릭 스왈웰 하원의원은 “우리가 배넌이나 커크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출신이지만 대표적 반 트럼프 인사인 애덤 킨징어 전 하원의원도 “배넌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혼란의 창시자”라며 “용서받을 수 없고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