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 “연습실에서 거울을 가리는 이유요?”

입력 2025-03-13 05:00
이스라엘 출신 세계적인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이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춤 철학을 밝히고 있다. (c)세종문화회관

“모든 사람이 춤을 춰야 합니다. 춤은 몸이라는 감옥에서 우리를 꺼내 자유롭게 해줍니다.”

서울시발레단의 올해 개막작 ‘데카당스’(14~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공연을 위해 내한한 이스라엘 출신 세계적인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은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춤 철학을 밝혔다. 나하린은 현대무용 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바체바 무용단을 1990~2018년 이끌었으며, 지금도 상임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삶은 영화 ‘미스터 가가’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무브’로 제작됐으며, 그의 작품은 바체바 무용단을 넘어 전 세계 많은 무용단의 레퍼토리로 채택돼 있다.

이스라엘 출신 세계적인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이 최근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c)세종문화회관

‘데카당스’는 나하린의 춤 철학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2000년 바체바 무용단 예술감독 취임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데카당스’는 나하린의 여러 작품 중 하이라이트들을 발췌해 하나의 공연으로 재구성했다. 특히 마지막에 무용수들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춤추며 끝난다. 작품 제목은 10을 의미하는 ‘데카’(Deca)와 춤을 뜻하는 ‘댄스’(Dance)의 합성어다. 20년 넘게 공연되면서 무용단에 따라 새로운 작품을 추가하며 계속 바뀌고 있다. 이번 서울시발레단 버전은 1993~2023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8편을 엮었으며, 시즌 무용수 18명과 프로젝트 무용수 4명 등 총 22명이 출연한다.

나하린은 “‘데카당스’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작품으로 무용수들에게 놀이터 같은 역할을 한다. 첫 공연 이후 20여 년이 흘렀는데 그때와 지금의 춤이 완전히 다르다.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도 무용수들의 연습 영상을 보고 안무를 새롭게 추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2000년 ‘데카당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지속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을 재구성하며 무용수들은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관객은 춤을 보는 것을 넘어 함께 춤을 추는 의미에 대해 알게 되면서 오랫동안 공연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현대무용단 바체바 무용단이 오하드 나하린 안무 ‘데카당스’를 공연하고 있다. (c)Maxim Waratt.

그의 작품은 무용수들 훈련을 위해 개발한 움직임 언어 ‘가가’(Gaga)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어린아이가 옹알거리는 모습에서 이름을 지은 ‘가가’는 신체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무용수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그는 “가가는 우리의 엔진을 강화하는 언어”라며 “단순히 신체적으로 몸을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완벽하지 않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철학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힘들고 풀기 어려운 삶의 문제에 직면할 때 강한 엔진을 갖고 있으면 무거운 것도 가볍게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이미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셈이다. 완벽하지 않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무 연습 때 무용수들이 거울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이 거울에 비친 모습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감각만으로 춤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발레단과도 ‘데카당스’의 연습실 거울을 커튼으로 가린 채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그는 “무용계가 거울을 써온 건 큰 실수다. 거울은 무용수의 영혼을 망치고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며 “우리가 일상에서나 농구, 요리, 수술 등 어떤 작업을 할 때나 거울을 보지 않듯이 춤을 출 때도 자신과 외부의 감각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