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젊은 신학대 총장이 주3일 학교 기숙사에서 출퇴근 하는 이유?

입력 2025-03-12 16:18 수정 2025-03-12 16:34
안상혁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1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의 학교 총장실에서 '목회적 돌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수원=신석현 포토그래퍼

안상혁(55) 합동신학대학원대(합신신대원) 신임 총장은 일주일에 세 번은 학교 기숙사에 머문다. 지난달 취임사에서 학생들과 개별 면담에 나서겠다고 밝힌 그는 매일 교내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 뒤 학생들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안 총장은 12일 경기도 수원의 학교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이런 사연을 전하며 노란색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수첩엔 그동안 만난 학생들의 기도 제목과 나눔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안 총장은 “학교 초대 원장이신 정암 박윤선 목사님도 검은색으로 된 이런 노트를 갖고 다니셨다고 한다”며 “한국교회에 신학과 인격의 균형을 갖춘 사역자들을 배출하겠다는 학교의 오랜 노력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일 뿐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며 자세를 낮췄다.

안 총장은 취임 당시 모든 학생이 ‘목회적 돌봄’을 경험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합신멘토링시스템(HMS)을 정착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학생이 교수 등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 서로 인격적으로 깊이 교제하고, 어려움 앞에선 함께 기도하는 기도공동체를 통해 목회적 돌봄을 체험한다면 목회 현장에 나가서도 목회자에 주어진 목양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 총장이 학생과 면담하며 받은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안 총장은 “비공개 기도 제목은 따로 적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수원=신석현 포토그래퍼

안 총장이 목회적 돌봄을 취임 일성으로 꼽은 건 그 역시 이 학교 신학대생일 때 깨달은 바와도 연결돼 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안 총장은 16개월 된 자녀의 희소병 진단 소식을 들었다. 안 총장 말마따나 “강한 연단의 시간” 가운데에서도 학교 수업을 통해 전해지는 성경 말씀과 하나님 사랑은 그에게 큰 위로를 줬다. 안 총장은 “지금도 신학생 중에는 가정의 문제나 질병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더라”며 “미래 목회자가 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연단의 시간을 통해 공감과 목양 능력을 훈련하시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안 총장은 이어 “주님이 맡기신 양 떼 같은 성도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좋은 꼴’과 ‘살진 꼴’을 잘 먹이며 목양하는 사역자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목표이다”며 “재학생들이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에 따라 매 학기 개혁신학의 깊이 있는 가르침을 배우고 맛보게 하며, 신앙과 양심에 따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 성장시켜 생수의 강처럼 한국교회에 흘려보내려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신학대와 한국교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목회학석사(M.Div.) 과정을 밟으려는 학생 수는 해를 거듭하며 줄어들고 있고, 각 교회에서는 양질의 교육 전도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안 총장은 “이제 지역 교회가 직접 다음세대를 말씀으로 양육할 사역자를 발굴해야 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며 “학생 수 감소로 신학교 입학의 문턱이 낮아진 불가피한 현실에서 입학한 신학생을 더욱 철저히 훈련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역자로 양성하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안 총장이 취임 후 집중하는 또 다른 사역 중 하나는 ‘1만원과 함께하는 합신사랑 기도후원 약정 운동’이다. 한 개척교회가 교회 이름으로 매달 1만원을 학교에 후원하기로 약정하면, 안 총장은 그 교회를 방문해 기도 제목을 받아온다. 이후, 매달 한 차례 진행되는 학내 기도회에서 재학생들과 함께 후원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안 총장은 “총장의 방문이 교회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되기에 추가 후원을 요구하지 않으며 사례비도 일절 받지 않고, 오히려 사비로 개척교회 목사님 가정을 대접하며 위로도 건넨다”며 “물질 후원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학교와 교회를 연결해 목회 현장의 고민과 목소리를 학생들과 공유하며 함께 기도하는 ‘기도 후원’ 공동체를 만들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목회 현장 소식을 간접으로나마 들으며 현장 감각을 기르게 되는 효과도 있다.

안 총장의 뜻에 공감한 선배 목회자와 동문도 후원금이나 신간 도서 등을 기증하며 물심양면으로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안 총장은 “현재 목회학석사 과정의 2학년 학생 기수가 48기이다”며 “24기 졸업생으로 정확히 중간 세대에 있는 제가 총장에 선출된 이유가 바로 그 중간역할을 하라는 뜻 아닐까 한다”며 웃었다.
안 총장은 “‘좋은 꼴’과 ‘살진 꼴’은 일종의 자연식이다”며 “학교가 추구하는 개혁신학은 ‘오직 성경’의 원칙에 따라 영적 양식을 제공하는 목자를 양성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수원=신석현 포토그래퍼

분열을 거듭하는 현 한국사회 속 목회자의 신뢰도 역시 낮아지는 이 위기의 때, 세상이 필요로 하는 목회자를 배출해내는 신학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역사신학자인 안 총장에게 작금의 한국사회와 교회가 처한 위기 해법을 물었다.

안 총장은 “한국교회는 신학교육과 경건한 삶의 조화를 강조하는 경건주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며 “‘교회를 위한 신학’을 명분 삼아 신학교육이 게으르고 무책임한 반지성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서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본질적인 소명을 감당할 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며 “교회와 신자의 소명 모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교회와 신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성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수원=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