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12일 이임사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풀어냈다.
정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2009년 2월이었다고 회고하며 “그날, 민주당에 복당해 달라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며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좀 더 강했더라면 대통령님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졌을까? 마음이 정말 아팠다”고 전했다.
정 이사장은 “함께 한 시간이 참 좋았다. 정치할 맛이 나던 시절이었다”면서 “제가 초선 시절에 현대차 파업 중재를 위해 함께 갔던 현장에서 대통령님이 ‘갈등이 있을 때 나서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의 본령 가운데 본령이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게 정치라고 배웠고, 그렇게 하려고 힘껏 노력했고, 그렇게 하면서 정치하는 재미와 보람을 찾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좀 어떠신가요? 답답하시죠? 저도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며 “대통령님께서 귀가 닳도록 말씀하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상식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정 이사장은 “경고 삼아 계엄령을 선포하는 세상이니 달리 더 무슨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겠냐”며 “그러고도,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그러나 “진보적 열정을 가진 노무현의 후예들이 결국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노무현보다 더 노무현답게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저는 비록 재단을 떠나지만,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며 “꿈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다”며 작별의 글을 마쳤다.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임사>
노무현 대통령님, 저는 이제 노무현재단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물러납니다. 벌써 3년이나 됐습니다. 잘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성격 잘 아시겠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대통령님을 본 날이 2009년 2월입니다. 그때 제가 왜 봉하에 왔는지 좀 의아해 하셨지만, 부산에 간 김에 그냥 들렀습니다. 무척 반가워 해 주셨죠. 그런데 얼굴에 그늘이 있었습니다. 그것까지 숨기지는 못하시더군요. 그날, 민주당에 복당해 달라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좀 더 강했더라면 대통령님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졌을까?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그렇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재단 이사장으로 3년 봉사했으니 이제 절반쯤은 빚을 갚은 셈 치겠습니다.
대통령님과 저는 친하게 지낼 기회가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잘 안 맞았습니다. 저는 호남에 기업 출신인데, 대통령님은 영남 출신에 노동계를 대변하는 투사였습니다. 저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사람인데, 대통령님은 정 반대셨죠. 대통령님은 늘 뭔가 일을 벌이려고 했고, 저는 현실을 중시하면서 일을 수습하는 편이었습니다. 가끔은 대통령님의 직선적이고 호방한 스타일이 부러웠지만,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하는 말인데, 저는 대통령님이 어색하고 불편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긴 저도 항상 고분고분하지는 않았죠.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우리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싸우지 않고 함께한 것 자체가 신기합니다.
그래도, 함께 한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정치할 맛이 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초선 시절에 현대차 파업 중재를 위해 함께 갔던 현장에서 대통령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나서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의 본령 가운데 본령이다.” 우리는 그게 정치라고 배웠고, 그렇게 하려고 힘껏 노력했고, 그렇게 하면서 정치하는 재미와 보람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뭐가 달라진 게 있냐고 물으신다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좀 어떠신가요? 답답하시죠? 저도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대통령님께서 귀가 닳도록 말씀하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상식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몰상식이 상식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행세하는 세상입니다. 경고 삼아 계엄령을 선포하는 세상이니 달리 더 무슨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고도,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세상입니다.
이러다간 푸념이 끝도 없겠습니다. 우리 노무현재단에 대해서도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재단이 미래를 봐야 하는데 아직은 과거에 많이 머물러 있습니다. 아마도 대통령님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많이 남아서 추억의 끈을 놓기 싫어 그런 듯합니다. 그러나 이젠 과감하게 미래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이 무엇이었는가를 넘어, 그 세상을 어떻게 빨리 맞이할 것이냐에 집중해야 합니다. 대통령님께서도 동의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새로 취임하는 차성수 이사장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리운 노무현 대통령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진보적 열정을 가진 노무현의 후예들이 결국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노무현보다 더 노무현답게 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비록 재단을 떠나지만,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꿈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전국의 회원 여러분, 재단 직원 여러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