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당국이 컬럼비아대학교의 반이스라엘 시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팔레스타인 출신 대학원생을 체포하고 학생 비자와 영주권까지 박탈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스라엘 학생운동가들에 대한 추방이 시작됐다고 알렸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마무드 칼릴이란 이름의 이 학생은 지난 8일(현지시간) 컬럼비아대 맨해튼 캠퍼스 부근에 있는 대학 소유 기숙사에서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칼릴의 변호사에 따르면, ICE 단속원은 국무부가 칼릴의 학생비자를 몰수하라는 명령을 내려 이를 이행했다고 말했다. 칼릴은 미국인 여성과 결혼해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그것도 몰수됐다. 칼릴은 현재 뉴저지주 엘리자베스 소재 이민 수용 시설에 감금돼 있다.
칼릴의 변호사는 ICE 직원들은 임신 8개월인 칼릴의 아내에게 그가 무슨 죄로 체포되었는지 밝히기를 거부했다며 아직 그가 왜 체포되었는지 이유조차 알아내지 못했다고 AP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칼릴의 체포에 대해 “많은 사람들 중 첫 번째 체포”라며 “우리는 콜롬비아대와 전국의 다른 대학들에서 친테러, 반유대주의, 반미 활동을 한 학생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부터 반이스라엘 운동을 하는 유학생들을 추방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칼릴이 “하마스에 맞춰 활동을 주도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무부 장관이 미국 내에 존재하거나 활동하는 외국인은 미국에 잠재적으로 심각한 불리한 외교 정책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외국인은 추방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소개했다.
올해 30세의 칼릴은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2022년 12월 학생비자로 미국에 입국해 2024년 12월에 컬럼비아대 국제공공문제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23년 11월에 미국인 여성과 결혼해 2024년에 합법적인 영주권자가 되었다.
합법적인 영주권자 또는 영주권 소지자는 헌법에 의해 보호되며, 헌법에는 수정헌법 제1조의 언론 자유 권리와 수정헌법 제5조의 적법 절차 권리가 포함된다.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칼릴을 추방하려는 시도는 헌법적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올해 30세의 칼릴은 지난해 벌어진 컬럼비아대의 반이스라엘 시위에서 대변인 역할을 했고 학교와의 협상에도 대표자로 나섰다. 그 때문에 학생 시위활동가로는 매우 드물게 이름과 신원이 공개됐다.
AP에 따르면, 칼릴은 컬럼비아대의 새 운영진이 반이스라엘 시위 주동자로 작성한 수십 명의 학생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상대로 반유대주의 성향의 학생들을 색출하도록 명령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대학에 대한 연방 지원금을 삭제하겠다고 압박했다.
컬럼비아대가 작성한 칼릴의 반유대주의 혐의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일을 기념하는 행진을 조직하는데 참여한 것과 시오니즘 비판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다.
칼릴의 구금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청원에 10일 저녁까지 17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이날 맨해튼 시내에서는 칼릴의 구금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여져 약 3000여명이 참가했다. 맨해튼의 연방 판사는 칼릴의 구금 합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청원을 검토하는 동안 칼릴을 미국에서 추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필자인 미셸 골드버그는 칼릴 구금 사태를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며 “합법적으로 미국에 있는 누군가가 헌법적으로 보호받는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날 수 있다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에 살았던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