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이 게임업계에 화두로 떠오르면서 14년간 관련 사업에 공들인 엔씨소프트가 꿈틀거리고 있다. 회사 분사에 맞춰 AI 전담 자회사를 출범하고 올해부터 게임 개발 과정에서의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패션, 미디어, 콘텐츠 등 다양한 산업계와 협력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면서 십수년간의 투자 결실을 볼 거란 기대감이 크다.
1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는 지난달 1일 물적분할을 통해 사내 AI 연구 개발 조직인 ‘엔씨리서치’를 별도 법인인 ‘엔씨 AI’로 분사했다. 게임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Everyone can be a Creator)’라는 미션을 골자로 게임을 포함한 각종 산업에서 혁신적인 AI 솔루션을 접목하고 있다. 회사 대표는 리서치본부를 총괄하던 이연수 본부장이 이끌고 있다.
엔씨는 그동안 미래 먹거리의 일환으로 ‘AI 연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2011년 업계에서 유일하게 AI 연구 조직을 신설했고 오랜 연구 끝에 2023년엔 게임사 최초로 한국어 기반의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바르코(VARCO)’를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 회사에선 개발 중인 신작 NPC(비플레이 캐릭터·Non-Player Character) 캐릭터 생성, 인 게임 동영상 등 게임 제작 과정 전반에서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바르코 텍스처 프롬프트에 ‘엘프(elf)’ ‘노란색이 살짝 보이는 초록색 머리(green hair with a hint of yellow)’ ‘어두운 조명(dark lighting)’ ‘진지한 얼굴(serious face)’ 등의 간단한 문구를 삽입하면 이를 형상화한 캐릭터가 단 몇 초 만에 생성된다.
캐릭터의 목소리나 게임 배경을 제작할 때도 널리 쓰인다. 바르코 AI 음성합성(TTS)에선 대사만 입력하면 성별, 연령대, 음역, 음색, 분위기 등에 따라 캐릭터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배경을 제작할 때도 몇 가지의 단어로 빈민촌에서 볼법한 집을 금세 만든다. 자사의 LLM을 활용해 게임 기획, 운영, 아트 등 모든 제작과정에서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업계에선 손에 꼽히는 ‘AI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최근 관련 행사에선 그간 쌓아 올린 기술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엔씨 AI는 지난 3일부터 사흘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에서 ▲감정 연기가 가능한 AI TTS ▲음성 기반 얼굴 애니메이션 생성 기술을 결합한 체험형 데모 ‘아바타시프트(Avatarshift)’를 공개했다. 1000명의 넘는 부스 방문객들은 본인의 얼굴을 기반으로 게임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 속 대사를 연기하는 AI 캐릭터 영상을 체험하는 등 엔씨 AI 기술력을 체험했다.
올해 회사의 숙제는 수익화다. 엔씨가 바르코를 개발한 지 어언 2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수익화를 구축하진 못했다. 올해부터는 오랜 기간 연구·개발(R&D)로 쌓아 올린 AI 역량을 활용해 패션, 미디어, 콘텐츠 사업 등 다양한 산업에 맞춤형 첨단 AI 솔루션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제공하는 게 회사의 목표다.
박병무 대표는 4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엔씨 AI의 분사는 AI 경쟁력을 고도화해 다른 개발사나 제3자에게도 적용하는 수익사업으로 바꾸려는 전략”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최근 회사가 임수진 전 아워홈 신성장테크비즈니스 부문장을 회사의 최고사업책임자(CBO)로 영입한 것도 서비스 상용화 및 수익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임 CBO는 삼성SDS, 인터파크, 넥슨, CJ올리브영 등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서비스 기업에서 신규 서비스 기획을 담당해왔다. 2015년에는 미용 서비스 예약 플랫폼 ‘헤이뷰티’를 창업한 바 있다.
이 엔씨 AI 대표는 “MWC 2025에서 최신 AI 기술을 직접 선보이며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과 의미 있는 논의를 나눴다”면서 “앞으로 엔씨 AI는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가치를 더할 수 있는 혁신적인 AI 서비스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