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확산되는 트럼피즘(트럼프주의)에 대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급격한 리버럴리즘(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루키는 9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2년 전 미국에서 반 년 정도 생활했을 때, 글로벌리즘이나 LGBTQ 등 성소수자의 주장이 극단적으로 확대돼 짜증이 나거나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 주장들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개혁이 너무 빨리 진행되면 사람들의 불안감, 불신감을 부추길 것이고 그것이 작년 미국 대선 결과에도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키는 일본에서 트럼피즘이 아직 전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리버럴리즘의 진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며 “일본이 점점 이민을 받아들이고 성소수자의 권리가 확산되면 그들에 대한 반동은 강해져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루키는 또 트럼피즘의 승리를 거짓말의 승리로 해석하며 그 밑바탕에 사회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가 공약한 것이 누가 생각해도 될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알면서도 지지한다는 점이 있다. 모두 거짓말을 당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거짓말이라도 밝은 것, 혹은 강한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거짓말에 끌리는 것은 “사회의 폐색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960년대의 젊은이 세대는 사회가 좋아져 갈 것이라는 기본적인 전망 아래 살고 있었지만 그 이후의 사람에게 그러한 사상은 가질 수 없었다”며 “다들 디스토피아 느낌 같은 걸 가지고 있다. 그런 것들의 축적으로 인한 폐색감이 트럼프적인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이라도 괜찮으니까 좋아진다는 것을 듣고 싶다, 믿고 싶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러한 욕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루키는 최근 미국 소설가 팀 오브라이언의 장편소설 ‘아메리카 판타스티카(America Fantastica)’를 일본어로 번역해 출간한 것을 계기로 인터뷰를 가졌다. 일본어판 제목은 ‘허언의 나라’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허위 사실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사회를 그리면서 미국 사회와 트럼프 정권을 비판한다. ‘판타스티카’는 ‘망상벽’이라는 뜻이다.
하루키는 “지금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세계가 마치 중세처럼 되어 간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글로벌리즘이나 자유무역, 성소수자 권리, 지속가능성, 환경 문제 대응 등이 확산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두가 벽을 쌓고 성 안에서 지키기 시작한 느낌”이라며 “사람들의 의식도 봉건적, 지역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이것을 ‘세계의 중세화’라고 부르고 있다”며 “중세화가 의미하는 것은 “소규모 지역전”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전이 요구하는 것은 영토의 확대밖에 없다”며 “푸틴이나 네타냐후가 하고 있는 것은 중세시대처럼 영토를 늘리려는 것뿐이다. 매우 단순하지만 매우 무서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