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에 척박해진 출산환경, 생명 최전선 기쁨 지키는 조산사들

입력 2025-03-10 13:59 수정 2025-03-13 13:57
정승민 둥지조산원 원장이 2024년 산후가정방문을 위해 찾아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가정집에서 만난 아기와 눈인사하고 있다. 둥지조산원 제공

전북 전주에 사는 서화진(35)씨는 세 자녀 모두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했다. 그가 조산사 도움을 받아 출산하기로 한 건 의료진 부족으로 열악해진 병원 환경에서 쫓기듯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서다. 전주 시내에 분만병원이 있긴 하지만 선택지가 적고, 전주 외 전북 주변 지역으로 가면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 분만 가능 병원을 찾기도 어렵다는 게 서씨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아이가 편안한 공간에서 배려받으며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조산원을 찾아 출산했다”라고 말했다.

전남 나주에 사는 홍주혜(33)씨도 2021년 첫째를 출산하기 위해 충북 청주까지 4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다. “자연주의 출산은커녕, 일반 분만이 가능한 병원도 찾기 힘들었어요. 출산을 앞두고 병원 근처 숙소를 잡아야 할지, 응급 상황에서 이동하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죠.”

의료 공백 속 외면받는 생명 출생 과정의 최전선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출산이 단순한 의료가 아니라 생명의 기쁨을 맞는 일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임신 출산 과정을 관리하는 조산사들이다.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산모가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사례 등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일부 소방서에서는 조산사를 초빙해 응급 분만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홍주혜(33)씨가 2021년 8월 충북 청주에 있는 자연출산센터에서 출산한 첫째 아이의 모습. 오른쪽은 서화진(35) 홍성훈(35)부부가 2021년에 같은 장소에서 아이를 출산한 직후 찍은 기념사진. 엄지연 조산사 제공

현행법상 조산사는 간호 면허와 조산 면허를 취득한 의료 전문가로 임신부터 출산 후까지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관리한다. 의료법 제2조에 따르면 이상 분만이나 의학적 처치는 의사의 영역으로 제한되지만 의료 공백이 커지는 현실에서 조산사들은 생명의 최후 보루를 지키고 있다.

엄지연 조산사가 2019년 충북 청주에 위치한 김씨사진관에서 조산사 유니폼을 입고 첫째아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엄지연 조산사 제공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에스더기도운동센터에서 열린 러브라이프 주최 생명포럼에서 엄지연 자연출산센터 조산사는 “임신과 출산은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생명의 경이로운 과정”이라며 조산사의 사명을 강조했다. 그는 “조산사는 부모가 출산을 준비하고 가정이 믿음 안에서 한 생명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정승민 둥지조산원 원장도 “생명의 시작을 곁에서 지켜보는 조산사는 단순한 의료인이 아니라, 생명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동역자’”라며 “조산사(midwife)란 ‘여성의 곁에 있는 존재’라는 뜻처럼 임신·출산·산후 회복 과정에서 산모의 곁을 지키며 신체적·심리적으로 함께하는 친구이자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조산사가 강조하는 출산 돌봄의 핵심은 ‘함께하는 출산’이다. 출산은 단순히 아이를 낳는 사건이 아니라 가정 전체가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이다. 조산사는 임신, 출산, 산후 회복까지 여성과 가족을 지속적으로 돌보며 기쁨으로 생명의 탄생을 맞이하도록 돕는다.
정승민 둥지조산원 원장이 2024년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한 가정집에서 가정수중출산을 도운 이후 산모, 아기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둥지조산원 제공

이러한 조산사의 역할은 태아와 산모의 생명을 존중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프로라이프 사역에서도 중요하다. 정 원장은 조산원을 운영하며 미혼모 사역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조산원에서 미혼모들을 돌보며 임신, 출산, 산후 회복, 신생아 돌봄까지 1:1로 함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은 유대가 형성된다”며 “그러다 보면 낙태 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여성들이 출산을 결심하고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하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무엇보다 생명을 선택한 여성들의 가족이자 친구가 돼야 한다”며 “위기임산부를 위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크리스천 의료인과 조산사들이 신생아 돌봄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산사 양성을 위해 사회적 관심과 교회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정 원장은 “행복하고 안전한 출산을 돕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가정을 세우는 조산사들의 사역을 교회가 적극 응원해야 한다”며 “오늘날에도 히브리 산파(출애굽기 1:17)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조산사들이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고 요청했다.

엄 조산사는 “생명의 탄생을 존중하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가운데, 생명의 신비와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어놓고, 돌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가치가 사회에 자리 잡기를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