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은 ‘피가로의 결혼’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피가로의 결혼’은 18세기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가 1781년 발표한 동명 희극을 가리킨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하인 피가로가 알마비바 백작이 자신의 연인인 하녀 수잔나에게 ‘초야권’(신부의 첫날밤)을 행사하려는 속셈을 알고 백작부인, 수잔나와 함께 막아내는 이야기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중세 봉건시대의 악습인 ‘초야권’을 소재로 귀족들의 부도덕을 조롱한 이 작품의 상연을 금지했다. 5차례 수정에도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자 보마르셰는 살롱에서 낭독회를 열어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결국, 루이 16세는 여론 때문에 상연을 허락했는데, 1784년 초연 당시 사람들이 밀려드는 바람에 3명이 압사하기까지 했다.
모차르트는 1786년 보마르셰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으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 당시 오페라에서 흔히 사용되던 이탈리아어로 쓰였다. 그리고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대폭 뺐다. 예를 들어 원작 희곡의 초야권 대신 알마비바 백작이 아내에게 권태기를 느껴 수잔나를 꾀는 것으로 바꾸는가 하면 피가로가 귀족을 직접 질타하던 대사 역시 삭제됐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초연한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그다지 열광적이지 않았지만 몇 달 뒤 체코 프라하에서 극찬을 받은 이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오페라 초연으로부터 3년 뒤인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자주 공연되는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다. 서곡과 이중창이 유명한 이 작품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사운드트랙으로도 쓰여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올해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20~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올린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가 지휘를 맡고 프랑스 연출가 뱅상 위게가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알마비바 백작 역에 바리톤 양준모과 이동환, 백작부인 역에 소프라노 홍주영과 최지은, 수잔나 역에 소프라노 이혜정과 손나래, 피가로 역에 베이스바리톤 김병길과 베이스 박재성이 출연한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무대와 의상이다. 패션 디자이너에서 출발해 인테리어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피에르 요바노비치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프렌치 럭셔리 아이콘’으로 불리는 요바노비치는 지난 2023년 뱅상 위게의 제안으로 스위스 바젤 극장의 ‘리골레토’에 참여했다. 당시 무대를 가로지르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부각한 무대디자인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뷔식을 치렀다.
국립오페라단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그는 회전 무대를 활용하여 백작부인의 아틀리에와 백작의 저택을 다채로운 각도로 보여주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태양 빛의 변화를 통해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광란의 하루’라는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무대 의상 디자이너로도 데뷔한다. 매듭과 저고리 등 한국의 전통적 요소와 1920~30년대 시대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53벌의 의상을 선보일 예정으로 국립오페라단의 무대와 의상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예정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