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생물학적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를 출산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자 친자 검사를 진행한 후 아명을 지어줬고, 어머니와 산후조리원, 양육비 등에 대해 논의했다. 다만,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법률혼에 대해서 선을 그으면서 법률적으로 아이는 법적인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혼인외출생자’가 됐다.
아이는 아직 법적으로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다. 법적으로 아버지의 자식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지는 혼인외출생자를 그의 생부가 자신의 자식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인지는 생부의 자유의사에 의한 ‘임의인지’와 생부가 임의로 인지하지 않는 경우 재판을 통해 이뤄지는 ‘강제인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부가 임의인지를 하지 않는 경우, 혼외자가 스스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인지청구 소송에서는 보통 유전자 검사를 신청하고, 법원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토대로 판결을 내린다. 인지는 재판이 확정될 때 효력이 발생하고, 혼외자의 출생 시로 소급해서 친자관계가 인정된다.
다음 문제는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이냐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부성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다만 부모가 혼인 신고를 할 때 협의한 경우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라고 예외 규정을 명시하고 있어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도 가능하다.
어머니의 ‘성’도 따를 수 있게 법이 바뀐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오랜 관습이 있었다. 바로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호주제’다. 이 호주제에 따라서 여성들은 출생과 동시에 아버지의 호적에서 출발해서 결혼하면 남편, 남편이 죽으면 다시 아들의 호적으로 계속 옮겨야만 했다.
그런데 2005년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상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어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호주제의 근거 법률이던 호적법이 폐지됐고, 2008년부터 기존의 호적을 대신할 가족관계등록부가 사용됐다. 호주제와 호적제가 폐지되면서 여성은 남성의 호적을 따라다닐 필요가 없게 됐고, 자녀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게 됐다.
법적으로 아버지가 정해지고 누구의 성을 따를지가 정해진다고 해도 앞으로 매년 1만명 넘게 출생하는 혼인외출생자가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난감하기만 하다. 혼인외출생자의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임신과 동시에 연락을 끊거나 이미 헤어져서 연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로 살아가기에는 여전히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편견 등 걸림돌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이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자식으로 인정했고,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혀서 다행이라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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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