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디캅.(안녕하세요)
김삼성 최엘지 선교사입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평안을 전합니다.
2001년 저는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이자 부산교육대학 특수교육학과 강사직을 그만두고 2002년 선교사로 인도에 파송됐습니다. 교사였던 아내와 함께 선교사 자녀학교에서 ‘MK’(Missionary Kids)를 가르치며 그들을 글로벌 리더로 양육하는 꿈을 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10년간 장애 어린이 교육과 어린이 사역자 훈련학교를 운영하며 지도자를 양성했고 3년간 선교사 훈련국장으로 섬겼습니다.
또한 하노이 사범대 특수교육학과의 문을 열어 주셔서 교수·대학생·특수교사들에게 한국의 특수교육을 소개하며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특수교육센터와 협력해 베트남의 장애 학생들을 교육할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선교사가 되면서 자녀들이 겪을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교사였던 저희 부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우리 자녀들에게는 신앙 교육뿐만 아니라 생활과 기본적인 일상 교육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선교사로 한국을 떠나기 전 자녀들(당시 8세, 11세)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데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으며 그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보지 않은 우리는 자녀들이 겪는 심리적·문화적 혼란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알아채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고 자녀들을 당신의 방법대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해발 2200미터, 34시간 거리의 기숙형 헤브론 선교사 자녀학교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헌신된 교사 선교사들을 만나며 꿈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교사 선교사로 헌신한 선생님들이 말씀과 신앙으로 교육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많은 선교사들이 자녀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잠시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삶을 20년 넘게 반복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달면서도 쓴 맛’을 경험하며 자란 것 같습니다. 이들은 현지 문화에 적응하며 이중 언어를 익혔고 다양한 국적의 선교사 자녀들과 교제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지지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다져갔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한 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특히 선교사 자녀로 자라며 현지 친구들을 긍휼히 여기고 인종차별 없이 기꺼이 다른 문화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마음을 가진 것이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언젠가는 우리도 전공을 살려 선교사 자녀학교의 교사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며 기도해 왔습니다. 세계 각지의 선교사들이 자녀교육 문제로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사로 섬길 기회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선교사 자녀 중 장애 자녀들에게 통합교육을 제공하는 선교사 자녀학교를 허락해 주시길 오랫동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2023년 태국 치앙마이에 위치한 그레이스 인터내셔널 스쿨(GIS)에서 선교사 자녀 중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합교육을 위한 특수교사로 섬길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침 학교에서 특수교사가 절실히 필요했던 터라 담당자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서류 제출과 두 차례의 인터뷰가 순조롭게 진행됐고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단순히 문의 차 보낸 이메일이 이렇게 큰 환영을 받을 줄 몰랐기에 저희도 이 모든 과정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2023년 7월부터 사역하고 있는 GIS에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후원을 받아 무보수로 섬기는 100여명 이상의 교사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600여명의 선교사 자녀들이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음세대의 리더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인터내셔널 스쿨(GIS)의 설립자인 진 폴츠 선교사는 많은 선교사가 자녀교육 문제로 인해 선교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많은 선교사 가정의 경우 선교지의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하거나, 입학하더라도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들 역시 자녀를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일부는 결국 사역을 중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레이스 학교에서 선교사들의 장애 자녀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자폐 스펙트럼, 다운증후군, 중복장애를 가진 선교사 자녀들이 있으며 이들은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귓불을 만지며 팔랑거리는 행동을 교정하고 친구들과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장애 아동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그들도 모든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주변 학생들과 교사들은 장애 학생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번쩍 들어 올리며 사랑을 표현하곤 합니다. 또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거나 소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의 든든한 사랑과 지지가 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덕분에 장애 학생들도 밝고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애 학생들은 오랜 시간 하나의 목표를 두고 교육을 받아도 행동이나 언어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으며 그 변화의 폭도 매우 미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중요한 시작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곳 학교의 모든 교사 선교사들은 선교사 자녀들의 학비를 저렴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아 사례비 없이 무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교육받은 학생들은 사회, 경제, 교육, 문화, 선교 등 장차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헌신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레이스에서 교사로 섬길 수 있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이곳에서 교육받고 자란 선교사 자녀들 중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교사로 섬기는 젊은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학교 곳곳에서는 매일 학생들이 서로를 위해, 동료 교사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깊은 감사와 든든함을 느낍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교사가 돼 장애 학생들의 성장을 꾸준히 지켜보며 작은 변화에도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교사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또한 모든 교사들이 선교사 자녀들을 다음세대의 글로벌 리더로 양육할 수 있도록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시고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치앙마이(태국)=글·사진 김삼성 선교사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