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판사, 로마서 통해 신앙과 삶의 길을 묻다

입력 2025-03-09 16:02

‘소년 재판’으로 사회에 깊은 울림을 던져온 천종호(60)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성경 속으로 들어가 율법과 은혜, 믿음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책 ‘천종호 판사는 바울에게 무엇을 물을까’를 출간했다.

지난 7일 부산지방법원 집무실에서 만난 천 부장판사는 “로마서 중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라는 말씀이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갔다. 그때 교회를 다녔던 친구들은 지금 한 명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천 부장판사는 지금 부산 금정평안교회(박기성 목사) 시무장로로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로마서를 통해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다고 했다.

천 부장판사는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나 97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소년범들을 법정에서 엄하게 꾸짖는 ‘호통 판사’, 자나 깨나 소년들 생각뿐이라는 뜻의 ‘만사소년’ ‘소년범들의 대부’ 등 별명이 많다. 그는 법의 잣대는 엄정하되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지닐 때 세상은 좀 더 정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천 부장판사는 책 출간에 대해 “신학자가 아닌 법학자의 관점에서 로마서를 분석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점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그간 법정에서 청소년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마주해온 천 부장판사는 이번 책에서 법률가의 시각으로 로마서를 꼼꼼히 탐독하며 신앙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서신으로 기독교 신학의 핵심 교리들을 담고 있어 예로부터 수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천 부장판사는 “초신자가 로마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는 것을 이 책의 출간 목적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딱딱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로마서를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논리적 사고로 풀어냈다. 그는 책에서 율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바울의 주장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특히 그는 법률가로서 율법의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고 사랑과 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천 부장판사는 처음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구술하고 필사자인 더디오가 기록했다(롬 16:22)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유대인’을 대표하는 사도 바울과 ‘유대인과 헬라인의 다문화 가정’ 출신인 디모데와 ‘헬라인’으로 여겨지는 더디오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세 사람을 등장시킨 것은 이들이 속한 혈통이 당시 로마 성도 간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천 부장판사는 “이 책에 담긴 질문과 대답과 설명은 로마서에 관한 단행본이나 소장하고 있는 로마서 주석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로마서에 대한 해설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마주하는 윤리적 딜레마와 삶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눈다. 천 판사는 법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의 공정 사랑 용서 등 다양한 가치들을 로마서의 가르침과 연결해 독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한다.

천종호 부장판사는 “로마서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법정에서 율법을 집행하는 판사로서 나는 어떻게 율법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라며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되돌아보고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책은 단순한 성경 해설서를 넘어 법률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깊은 신앙적 고민이 어우러진 독특한 결과물이다. 이용세 율하소망교회 목사는 추천사를 통해 “로마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 평신도뿐 아니라 설교자들에게도 귀하게 쓰임 받는 책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천종호(60)
1965년 부산 출생
1994년 사범시험 합격
1997년 부산지방법원 판사 임관. 부산고등법원, 창원지방법원, 부산가정법원, 부산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을 거쳐 현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중.

저서
‘천종호 판사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수상
환경재단 ‘2014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선정
2015년 제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대법원장 표창
2017년 한국 범죄방지재단 실천공로상
2017년 현직 법관 최초 제12회 ‘영산법률문화상’
2020년 보건복지부 옥조근정훈장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