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속 학교는 더 이상 청춘과 사랑, 성장의 공간이 아니다. 돈과 권력, 힘에 의한 서열화, 성적 향상을 위해서라면 약물 복용도 서슴지 않는 비정한 생존의 현장이 돼버렸다.
최근 몇 년 사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제작, 공개된 학교 배경의 드라마들을 살펴보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다수다. 10대 이야기인데 청소년은 볼 수 없는 학원물이 웬 말이냐 싶지만, 그만큼 청소년들의 교육 현장이 잔혹하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공개된 학원물 ‘스터디그룹’, ‘선의의 경쟁’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유플러스tv 드라마 ‘선의의 경쟁’은 모두가 선망하는 채화여고 안에서 치열한 입시경쟁을 벌이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우슬기(정수빈)와 학교를 꽉 잡고있는 전교 1등 유제이(이혜리), 제이를 질투하는 최경(오우리) 등 입시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학생들의 발버둥은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진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스터디그룹’은 코믹 액션 활극이지만, 이 안에 그려진 학교도 희망이 없긴 마찬가지다. 문제아들이 모인 유성공고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싸움 실력으로 전교생의 서열을 매긴다. 선생님들은 지도를 포기한 지 오래다. 그나마 주인공 윤가민(황민현)은 학교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싸움 장면이 잔인해 ‘19금’ 딱지를 붙이게 됐다.
이런 흐름은 최근 몇 년 새 강화됐다. 지상파 방송국에 비해 표현에 제약이 덜한 OTT가 등장하면서 높은 수위의 학원물이 꾸준히 제작됐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티빙 ‘피라미드 게임’부터 유플러스tv의 ‘하이쿠키’,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 ‘인간수업’, 그리고 웨이브의 ‘약한영웅 클래스 1’ 모두 학교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그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분류됐다.
이 드라마들 속 학생들은 성적 향상을 위해 마약과 같은 약물을 쿠키로 구워 먹거나 치열한 서열 싸움을 하며 서로를 죽음에 가까운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가혹한 폭력을 가하며 괴롭히는 건 기본이고, 돈을 벌기 위해 친구를 성매매로 내몰기도 한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6일 “‘개천에서 용 날 수 없는’ 시대의 변화, 내가 생존하기 위해 상대를 밟고 넘어서야 하는 무한 생존경쟁 체제가 교육의 틀을 완전히 훼손해버린 상황”이라며 “그게 학원물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학교를 기성세대 사회의 축소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학생들을 척박하고 잔인한 경쟁 환경에 내던진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현상 제시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그에 더해 학원물 간의 경쟁 구도 속에서 점점 자극의 강도는 세지고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어도 10대들이 쉽게 이런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모방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드라마가 시대의 반영물이라곤 하지만, 드라마의 또 다른 목적은 공동체의 건강함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거다. 지금처럼 디테일하게 현실을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1990년대에 방영됐던 ‘학교’ 시리즈의 첫 화도 학교 폭력 얘기였다. 그때도 학교 폭력, 따돌림이 있었음에도 따뜻한 드라마로 기억되는 건 함께 성장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그려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