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첫째 임무, 무력한 이들과 함께 울어주는 것”

입력 2025-03-06 15:29 수정 2025-03-06 18:5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약성경의 복음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은 예수의 십자가 수난이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형을 존재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가장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이라고 기록했다. 처형자 사체는 짐승의 먹이로 남겨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신원도 삭제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초대교회부터 지금껏 사순절(四旬節)에 매해 예수의 수난을 기념했다. 비참함 가운데 소망을 발견하는 역설의 기간이다. 고난주간의 시작인 5일부터 다음 달 20일인 부활주일까지 이어지는 올해 사순절에 의미를 더할 수 있는 묵상집 3권을 소개한다.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박영호 외 4인 지음/대한기독교서회

“할머니 어디 가요?/예배당 간다//근데 왜 울면서 가요?/울려고 간다//왜 예배당 가서 울어요?/울 데가 없다.”

한국YWCA연합회(YWCA)와 한국YMCA전국연맹(YMCA), 기독교방송(CBS) 등 4개 교회연합기관이 함께 펴낸 사순절 묵상집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대한기독교서회)에 실린 김환영의 시 ‘울 곳’이다. 2017년부터 매년 사순절·대림절 묵상집을 출간해 온 이들 기관이 올해 선정한 사순절 묵상 주제는 ‘돌봄의 여정’이다. 조은영(YWCA) 김경민(YMCA) 회장과 김진오(CBS) 사장, 작곡가 이준으로 구성된 기존 필진에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가 동참했다.

41편의 묵상 글 대부분을 집필한 박영호 목사는 각종 저작과 영화 등을 인용해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을 찾아오고 돌보는 사랑”임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중 백미는 시 ‘울 곳’을 들어 교회의 가장 첫째 임무로 “‘울 수 있는 공간’이 돼 주는 것”을 꼽은 부분이다. 고린도후서 11장 29절을 해설한 박 목사의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울며 모든 약함과 슬픔을 담당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교회는 ‘웃을 일만 있는 교회’가 아니라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케네스 리치 지음/손승우 엮음/비아

영국 신학자이자 성공회 사제인 케네스 리치가 쓴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비아)는 1994년 미국서 출간된 사순절 설교집의 고전이다. 영국의 노숙자 구호단체 센터포인트를 설립하고 마약중독자와 성매매 여성 등 도시 빈민과 공동체 생활을 한 저자는 교회의 사회적 실천을 강론하는 책을 주로 펴냈다. 이 책 역시 사순절 시기에 기억해야 할 ‘사회적 십자가’를 강조한다.

그는 “기독교인의 모든 예배와 참된 신학은 십자가와 하나님이 지금 고난받고 계신 곳에서, 고통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며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폭력을 제도화한 현실, 한 사람의 가치를 등한시하는 시대에서 자비의 실천은 전복적 행동”이라며 “자비란 곧 가장 멸시받는 이들이 겪는 고통을 하나님의 고난으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고자 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 일컬어지는 십자가 고난에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다.(빌 3:10) “그리스도의 끔찍한 어둠에 참여한 이들에게 정화와 치유가 주어진다”는 역설을 받아들일 때 신앙 여정은 본격 시작된다. 저자의 당부다. “골고다를 거쳐 지옥까지 통과하는 이, 그리고 거기에 계셨던 그리스도와 연대하는 이만이 거짓 자아에 사로잡힌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주의 종/카리 보 지음/김선영 엮음/한국루터란아워

‘주의 종’(한국루터란아워)은 미국 루터교 평신도단체인 루터란아워 미니스트리가 제작하고 한국루터란아워가 번역한 2025년 사순절 묵상집이다. 올해 역시 루터란아워 미니스트리 소속 신학 작가인 카리 보가 집필했다. 48일간 매일 묵상을 돕는 글과 한 줄 기도문, 질문에 찬송 QR코드도 실었다. 올해로 7년째 발간된 묵상집의 수익금은 한국루터란아워의 주요 사역인 어린이 성경 공부 프로그램과 기독 서적 출판, 무료 음악회 등에 쓰인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