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축가 리우지아쿤(68)이 2025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중국인이 받는 것은 2012년 왕수에 이어 두 번째다.
4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리우지아쿤은 고향인 중국 청두와 인근 충칭을 중심으로 중국 현대 건축의 대형화, 서구화, 과잉화 유행에서 벗어나 섬세하고 절제된 작업을 해왔다. 해외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로 외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도 없다.
청두의 시내 한 블럭을 여가, 상업, 문화 공간으로 조성한 ‘웨스트 빌리지’는 그의 대표작으로 자연과 건축의 공존, 사람과 건물의 조화를 잘 보여준다. 2008년 약 7만명이 사망한 쓰촨 대지진 후엔 지진 잔해물을 배합한 재생벽돌을 주요 재료로 사용해 주목을 받았다. 2013년 완공된 청두의 수징팡 박물관은 재생벽돌을 이용한 대표적 건축물이다. 대나무 숲이 있는 강가에 자리한 고대 불교 석조 박물관인 루예웬 박물관, 쑤저우황실가마벽돌박물관,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상하이 캠퍼스 등도 그의 유명한 작품들이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리우지아쿤에 대해 “과거에 대한 향수나 모호함 없이 중국 전통을 혁신의 발판으로 삼았다”며 “역사적 기록이자 인프라, 경관인 동시에 놀라운 공공 공간이 되는 새로운 건축을 창조했다”고 평가했다.
리우지아쿤은 수상 소감을 통해 ‘물처럼 장소에 스며드는 건축’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그는 “항상 물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열망해왔다”며 “고정된 형태로 나만의 것을 내세우기보단 지역 환경과 장소에 스며드는 건축을 지향해왔다”고 말했다.
리우지아쿤은 CNN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전통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저는 전통이 제시하는 형식보다는 전통이 주목하는 주제에 집중한다”며 전통 건축의 요소들은 기능적이고 현대적인 용도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는 “전통적인 형태는 당시 문화, 기술, 그리고 사람들의 생존 철학의 결과물”이라며 “전통이 항상 집중해온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기술과 방법을 사용한다면 전통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956년 청두에서 태어난 리우지아쿤은 문화대혁명의 물결 속에서 10대 시절의 3년을 시골에서 보냈다. 대학 졸업 후 관영 건축회사에서 일했지만 글쓰기에 더 관심이 많았던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건축계를 떠났다. 이후 10년을 티벳과 신장에서 글쓰기, 그림, 명상 등에 몰두하며 지냈다.
40대에 건축계로 복귀한 그는 1999년 자신의 이름을 건 민간 건축회사인 ‘지아쿤아키텍츠’를 설립했다.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중국 건축은 크고 높고 과시적으로 변해갔지만 그는 절제, 역사, 조화, 공공성 등을 추구하며 조용히 이름을 알려왔다.
리우지아쿤은 “점점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경향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CNN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신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발생하는 몇 가지 병폐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는 “중국의 도시들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두 가지 주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공공 공간과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의 관계이다”라며 “제 작업은 이 두 가지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프리츠커상은 1979년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건축가상으로 올해 54회를 맞았다. 해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 건축가를 선정해 시상한다. 그동안 루이스 바라간(멕시코), 자하 하디드(이라크), 렌조 피아노(이탈리아), 안도 다다오(일본)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 국적으로 보면 일본이 9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이 8명으로 그 다음이다. 한국인 수상자는 아직까지 없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