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라고 하면 흔히 ‘마약’을 떠올릴 정도로 마약 천국인 국가다. 이곳에선 지난 1964년부터 2016년까지 내전이 발생해 22만 명이 사망하고 68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의 여파로 국민 대다수는 지금껏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을 겪고 있다. 정신적 어려움은 사람들을 마약 중독과 자살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
콜롬비아 정부가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국민들의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OECD 평균보다 부족한 전문 인력(1000명당 정신과 의사 0.02명)과 낮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뚜렷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치유와 돌봄 사역에 매진하고 있는 선교사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총회장 김영걸 목사)에서 파송된 김윤정(55) 선교사다. 김 선교사는 과거 중국에서 13년을 사역한 뒤 콜롬비아로 이동해 올해로 10년째 사역 중이다. 남편인 고석훈 선교사는 현재 콜롬비아 개혁신학교 학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8개국 120여 명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온라인 및 대면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당초엔 정신건강 회복 사역에 큰 뜻이 없었다. 현지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목도한 후, 이 사역에 전념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자각하게 됐다. 또 코로나 기간 동안 신학교 교수 및 학생들의 자녀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입원하거나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김 선교사가 문제를 풀어갈 해법으로 삼은 것은 ‘사랑’이다. 서울중독심리연구소 김형근 소장이 주최한 자기사랑 세미나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사랑에 있다. 진정한 사랑을 맛보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각지에 ‘자기사랑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조언을 접한 뒤, 콜롬비아에도 그 사랑을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마약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가정에 직접 찾아가 상담 실습을 하고 안수기도를 진행했다. 김 선교사는 5일 줌인터뷰를 통해 “사역을 하면서 마약 중독의 이면에는 아픔과 결핍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 아픔과 결핍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정신건강 회복과 관련한 콜롬비아 현지 교회들의 자각과 동기부여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에 미국 정신과 의사인 이승호 목사 등을 초청해 ‘용서와 회복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현지 목회자와 교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역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선교사가 가장 크게 역점을 둔 것은 개혁신학교 내에 ‘정신건강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개인 사역도 좋지만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기관이 설립돼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획서를 작성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영적·현실적 도전에 직면했다.
내부적으로는 교직원들의 역할 변화, 신학교 자원의 재배치, 전통적 신학교육과 상담 실습의 조화,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초기 재정 및 인력 확보, 네트워크 구축, 상담 관련 스페인어 습득 등이 큰 숙제였다. 힘들 때마다 기도하면서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심을 경험했다. 마침내 열매를 맺어 2026년 정식 개소를 앞두고 있다.
정신건강센터의 목표는 단순한 상담소가 아니다. 회복과 사랑을 실천하는 하늘나라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김 선교사는 “앞으로 이 센터에서는 정신건강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정신건강 예방 및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다. 콜롬비아 아동·청소년 및 청년 맞춤형 정신건강 프로그램도 개발된다”며 “이를 통해 회복과 사랑의 씨앗을 아픔과 결핍이 만연한 콜롬비아에 널리 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