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신뢰를 잃고 있는 시대, 사순절을 개인 경건 훈련으로만 보내는 것이 충분할까요.
사순절(Lent)은 부활절을 앞두고 약 40일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고 경건하게 지내는 기독교 절기를 말합니다. 올해 사순절은 5일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해 다음 달 20일 부활절까지 일요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이어집니다.
교회마다 금식과 절제를 독려하고 출판사들은 묵상집을 홍보하며 독자들에게 ‘이번 사순절엔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사순절 도서’를 검색하면 각종 추천 목록이 쏟아집니다.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를 앞둔 유통업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교회’ ‘기독교’ ‘목사’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극우’ ‘비호감’ ‘갈등’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함께 따라붙습니다.
임성빈 전 장신대 총장은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순절은 신앙의 본질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며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지켰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순절은 ‘무엇을 끊었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절제 시즌처럼 변질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탐욕과 욕망을 비우는 사순절이지만 전문가들은 비운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임 전 총장은 “신념보다 십자가를 앞세우는 것, 화평을 이루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사순절이 가리키는 방향”이라며 “예수 당시 열심당이 그랬듯 지금 한국교회도 자기 신념이 십자가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순절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습니다.
윤영훈 성결대 문화선교학과 교수는 “사순절을 금욕을 넘어 실천의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절제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겁니다. 윤 교수는 “단순히 고기를 끊고, 커피를 멀리하고, 유튜브를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절제를 통해 무엇을 얻고 나누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기간에 이웃과 창조세계에 이바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권했습니다. 가령 부분적으로 금식을 하고 절약한 돈을 독거노인 도시락 후원에 사용하거나 40일 동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좋은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김상복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사순절의 미덕은 단순한 절제에 있지 않다”며 “고난 묵상을 넘어 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도 “내 기쁨이 너희에게 충만하기를 바란다”(요 15:11)였다는 점을 언급한 김 원로목사는 “이번 사순절이 고난을 넘어서는 사랑의 기쁨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습니다.
분열과 갈등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 그 사랑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사순절 아닐까요.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준 한 가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요.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