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함께한 120년…3·1 정신 담은 창작극 선보여

입력 2025-03-02 15:19 수정 2025-03-02 15:27
꽃재교회 교인들이 2일 서울 성동구 교회 2층 그랜드홀에서 창립 120주년 기념극 '너는 복이 될지라'를 선보였다. 이 교회 14대 담임인 이규갑 목사의 수감 장면을 연출한 모습.

암전. 한 줄기 조명이 한 여성의 얼굴을 비췄다. “미스 마커, 기회를 봐서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 남성이 절박한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미국인 선교사 미스 마커(Marker, Miss Jessie B. 마거瑪巨, 1875~?).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주님께서 병든 자, 가난한 자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도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조선이 저의 사명이니까요.”

꽃재교회(구 왕십리감리교회·김성복 목사) 창립 120주년 기념 창작극 ‘너는 복이 될지라’의 한 장면이다. 성도들의 손끝으로 빚은 무대가 2일 서울 성동구 꽃재교회 그랜드홀에서 공개됐다. 연극에는 교회를 세운 목회자들과 140여년 전 조선에 온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교인들의 모습도 그렸다.

꽃재교회 교인들이 2일 서울 성동구 교회 2층 그랜드홀에서 창립 120주년 기념극 '너는 복이 될지라'를 선보였다. 미국인 선교사 마커(Marker, Miss Jessie B. 마거瑪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면을 연출한 모습.

이번 작품은 한국 개신교 선교 140주년과 맞물려 교회의 신앙 유산과 선교적 사명을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교인들이 직접 대본을 집필하고 연기까지 맡았다. 3년 전부터 성극 사역을 전개하며 기획·발전시켜 온 무대다. 적게는 6살부터 60대까지, 배우 29명과 진행요원 5명 전원이 비전문가다. 이들은 올해 1월부터 합숙훈련을 비롯해 매주 연습을 통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황정원 성동구립극단 예술단장이 연출을 맡아 전문성을 더했다.

왕십리감리교회는 1905년 동대문교회에 출석하던 일곱 가정이 왕십리 심판서댁 사랑방에서 독자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의 기틀을 다졌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3·1운동을 주도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필주 목사는 이 교회의 2대, 4대, 10대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14대 담임 이규갑 목사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교회는 신앙뿐 아니라 교육과 계몽운동에도 앞장섰으며 야학과 여학교 운영을 통해 문맹 퇴치에 이바지했다. 2011년에는 지역을 넘어선 선교적 비전을 선언하며 꽃재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꽃재교회 교인들이 2일 서울 성동구 교회 2층 그랜드홀에서 창립 120주년 기념극 '너는 복이 될지라'를 선보였다.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의 입국 장면을 연출한 모습.

김성복 목사는 “꽃재교회는 단순한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민족 질곡의 역사 속에서 독립운동과 신앙을 함께 지켜온 교회”라며 “오늘 성극팀의 공연은 교회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연극과 노래로 표현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창립120주년준비위원인 윤문근 꽃재교회 장로는 “올해는 한국선교 140주년이자 교회 창립 1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로 이번 성극이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고 교회가 민족과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꽃재교회가 앞으로도 선교와 교육, 사회적 섬김을 실천하며 시대에 필요한 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꽃재교회 교인들이 2일 서울 성동구 교회 2층 그랜드홀에서 창립 120주년 기념극 '너는 복이 될지라'를 선보였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